195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2차대전을 종결 짓는 일본과 연합국 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체결됐다. 일본에 전쟁 책임을 묻고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국제법적으로 강제한 조약이다. 그러나 취지와 달리 조약 내용은 극히 부실했다. 일본이 강제 점령한 영토의 반환을 분명하게 명시하지 않았고, 식민지 범죄행위에 대한 배상책임도 묻지 않았다.
지금 한일 간 최대 현안인 독도는 5차 수정안까지 일본이 한국에 반환해야 할 지역으로 명시됐다가 6차 수정안에서 아무 설명 없이 빠졌다. 중국과 첨예하게 분쟁 중인 센카쿠열도 영유권도 거론되지 않았다. 만약 당시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완전한 청산이 이뤄졌다면 독도나 센카쿠열도 문제는 없었을 것이고, 일본이 지금껏 뻔뻔스레 부인하는 위안부 강제동원이나 난징대학살 등에 대한 역사적 진실도 빛을 보았을 것이다. 오히려 미국은 패전국 일본에 천황제 존속을 인정함으로써 전범국으로서의 국가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최대 피해국인 한국과 중국의 참여가 배제된 채 진행된 체결과정에서 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들이 격렬하게 반발한 것은 당연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당시는 한국전쟁 발발, 신흥 공산주의 대국인 중국의 부상, 소련과 미국의 좌우대립 등 냉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때였다. 미국이 일본에 주목한 것은 2차대전 청산이라는 역사적 책무가 아니라 냉전 이데올로기에 따른 일본의 지정학적 가치였다.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일본을 '패전국'이 아닌 '우방국'으로 탈바꿈시키는 게 미국의 목적이었던 셈이다. 강화조약이 체결된 51년 9월 8일 당일 미국과 일본 사이에 미일안보조약이 체결된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일본은 전범국으로서의 심판을 받을 틈도 없이 미국의 '동맹국'으로 재탄생했다.
62년 후인 지난해 10월 미국은 일본과의 안보협력위원회(2+2) 회담에서 일본의 집단적자위권을 인정했다. 이를 토대로 올해 안에 미일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할 계획이다. 일본을 끌어들여 날로 증대하는 동북아에서의 안보수요를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센카쿠열도에 대해서는 처음으로 "미일 안보조약 적용 대상"이라고 명시했다. 60여년의 시차가 있고, '냉전'과 '중국'이라는 시대상황의 차이가 있지만, 미국이 일본에 거는 전략적 가치는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쯤 해서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의 대미외교 방향이다. 가까스로 성사시킨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4월 한국 방문을 놓고 '일본에 대한 외교승리'라는 자찬이 정부에서 나온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확정된 미국 대통령의 순방 일정에 뒤늦게 뛰어들어 떼쓰듯 예정에 없던 한국 일정을 끼워 넣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는 정상회담의 성과를 낼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미국에 불필요한 외교적 부채만 낳을 뿐이다. 그렇잖아도 미국에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원자력협정 개정 등 우리가 사활적 이해를 건 이슈가 즐비하다. 얼마 전 일본은 건너뛰고 한국만 왔다고 해서 호들갑 떨었던 케리 국무장관의 방한 결과는 무엇인가. "과거사는 뒤로 하고 한일관계를 개선하라"는 쓴 소리만 남았다. 케리 장관은 또 "오바마 대통령 방한까지 한일갈등이 두드러져 보여서는 안 된다"며 통첩성 경고까지 날렸다. '일본의 책임 있는 조치가 먼저'라는 우리 입장과는 너무나 번지수가 달랐다. 케리 장관의 한마디 때문인지 주일대사가 일본 외무차관을 면담하고, 일본 외무성 국장은 한국에서 우리 당국자와 회담하는 등 분위기도 확연히 달라졌다.
미국을 앞세워 일본을 움직이게 하려는 전략에 반대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일본에 가면 한국도 와야 한다'는 식의 구걸외교로 미국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한일관계의 비극을 잉태한 원인이라는 것을 미국에 주지시키고,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미국이 지금이라도 이를 바로잡도록 유도하는 것이 대미외교의 올바른 방향이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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