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부장 김명현(가명ㆍ41)씨는 최근 새로운 여가거리가 생겼다. 초등학생 두 딸과 함께 피아노를 치며 영화 '겨울왕국'의 삽입곡 '렛 잇 고'를 부르는 것이다. 지난달 '겨울왕국'을 관람한 뒤 생겨난 문화 향유 방식이다. 김씨는 "'겨울왕국'은 정말 오랜만에 즐겁게 본 애니메이션"이라며 "일에 치이지만 않는다면 가족과 다시 보고 싶은 영화"라고 말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성인 관객의 성원과 재관람 열풍을 발판으로 1,00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다. 흥행 추세를 볼 때 이번 주말이나 다음주 월요일(24일) 1,000만 고지에 이를 전망이다. 외화로는 '아바타'(2009)이후 두 번째, 애니메이션으로는 사상 처음 흥행 위업을 이루는 것이다. 미국을 제외하면 한국의 흥행 수익이 가장 많아 "한국은 '겨울왕국'의 나라"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19일 미국 흥행집계전문사이트 박스오피스모조에 따르면 '겨울왕국'의 한국 매출액은 6,699만4,336달러로 미국을 제외한 53개국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디즈니가 '겨울왕국'의 해외 매출액(5억7,970만 달러) 중 11.55%를 한국에서 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영국 매출액(6,143만9,628만 달러)이 그나마 한국에 근접해 있을 뿐 대부분의 국가들에선 한국에 한참 떨어지는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은 전통적으로 세계 시장과 다른 길을 걸어왔다. 해외에서 잘되는 애니메이션이 한국에서 죽을 쑤기 일쑤였고 해외에서 별 재미를 못 본 영화가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하곤 했다. '겨울왕국'에게 애니메이션 흥행 왕좌를 내준 '쿵푸 팬더2'(506만2,722명)의 세계시장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순위는 41위다. 국내에선 '넘버3'를 자랑하는 '쿵푸 팬더'(407만3,009명)도 23위에 불과하다. 영화 관계자들은 가족 단위 관람에서 이유를 찾고 있다. 국내에서 애니메이션은 부모가 아이를 위해 함께 관람하는 장르라는 인식이 해외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흥행에 유리하다는 말이다. '겨울왕국'은 지난주 평일 관객 순위가 3위로 떨어지며 하향세가 완연했다. 하지만 주말 1위를 탈환하며 1,000만 관객 불씨를 살렸다. 주말 가족 관객이 몰린 덕이다.
'겨울왕국'이 성인 관객까지 포용했기에 꿈의 1,000만에 이를 수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영화홍보마케팅회사 영화인의 신유경 대표는 "기존 애니메이션이 대개 아동용 가족영화였다면 '겨울왕국'은 조부모도 함께 보는 성인 가족영화"라며 "60대 이상 관객도 심심찮게 눈에 띄는 이유"라고 말했다. 극장가의 한 관계자는 "30대 중반 이상 남자 관객들이 '겨울왕국'에 나오는 엘사에게 매력을 많이 느낀다고 들었다"며 "50대 이상은 보기 편한 뮤지컬 형식이라는 점에 매료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겨울왕국'의 관객 중 40%만 더빙판으로 관람한 점도 이 영화의 성인 선호도를 보여준다. 애니메이션의 더빙판 관람 비중은 보통 50%를 넘는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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