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어처 가구·장난감 기차 등 어릴적 추억 상기시켜연극·춤·문학적 요소 가미 "촬영후 사라지는 하루살이 영화"슬픈 이야기 따뜻하게 포장… 자막 대신 내레이션 방식 택해3월 6일부터 LG아트센터서
"이것은 촬영되는 동시에 상영되는 영화이자 그 제작 과정이 곧 무대예술이 되는, 그래서 울림이 있는 색다른 스토리텔링입니다."
'토토의 천국'(1991), '제8요일'(1996)로 1990년대를 풍미한 벨기에의 영화감독 자코 반 도마엘(57)이 무대 연출가로 한국 관객과 만난다. 안무가인 아내 미셸 안느 드 메이(55)와 함께 만든 공연 '키스 앤 크라이'가 3월 6~9일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2011년 벨기에 초연 후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은 물론 미국, 캐나다, 칠레 등지에서 초청 공연돼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미니어처 가구와 모형 기차, 물을 채운 수조 등으로 꾸민 작은 세트에서 두 무용수가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으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손가락 춤'을 펼친다. 이를 카메라로 촬영, 무대 상단 스크린에 투사해 한 편의 영화로 만들고 그 과정을 실시간으로 무대 위에 드러내는 독특한 방식의 공연이다. 방한에 앞서 이메일로 미리 만난 도마엘 감독은 "비디오 리코더나 DVD가 아닌, 공연을 본 사람의 머릿속에만 남는 마법 같은 예술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공연 연출에 도전한 이유를 밝혔다. "하루살이 영화죠. 모든 장면을 관객이 보는 앞에서 촬영합니다."
'토토의 천국'으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세자르영화제에서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받으며 세계 영화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도마엘 감독은 작품 한 편에 오랜 시간을 투자하기로 유명하다. 데뷔 20년이 넘었지만 연출한 장편 영화가 세 편에 불과하다. '키스 앤 크라이' 역시 프러덕션을 꾸리는데 4개월이 걸렸으며 첫 구상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스터 노바디'(2009) 제작이 한창이었는데, 아이들이 어려서 갖고 놀던 장난감과 손가락을 식탁 위에서 움직이면서 미셸과 함께 새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어요. 첫 공연 때 자기들 장난감이 무대에 오른 것을 보고 아이들이 좀 놀라기는 했죠."
'키스 앤 크라이'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이 점수를 기다리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하는 공간의 이름이다. 벨기에 작가 토마 귄지그의 동명 소설에서 이야기를 따온 공연 '키스 앤 크라이'는 지젤이라는 한 여인의 다섯 연인에 대한 사랑의 기억을 담고 있다. "지젤은 열두 살 때 기차에서 만난 소년과 손을 스친 것만으로 사랑에 빠져 그것을 평생의 추억으로 가슴에 품습니다. 손가락 춤의 콘셉트를 여기서 가져왔어요. 공연 시작 후 10초만 흐르면 손가락이 어느새 영화의 캐릭터로 보일 겁니다."
이야기의 전개는 내레이션을 통해 이뤄진다. 이번 공연은 도마엘 감독이 유튜브 영상을 보고 선택한 영화배우 유지태의 한국어로 녹음됐다. 자막이 아닌 내레이션을 선택한 이유와 관련해 그는 "목소리가 가미되면 슬픈 이야기가 좀 더 따뜻한 방식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포르투갈 시인 페르난도 페소아의 "자신의 인생을 살되, 인생이 자신을 살게 하지 말라"는 말을 좋아하는 도마엘 감독은 공연에 헨델, 비발디, 재즈와 더불어 포르투갈 기타 연주를 녹여 넣었다.
"당신의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어요. 일상의 작은 움직임을 포착해 추억을 비추는 이번 공연이 객석에 큰 울림을 일으키길 바랍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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