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실패는 불신을 키운다. 지난 몇 년 동안 모두가 소통을 힘주어 말하고, 누구도 의문을 던지지 않으니 그 필요성만큼은 완벽하게 소통되고 있다. 소통이란 단어의 유행은 역설적으로 한국이 불통의 사회임을 반증한다. 너나 없이 소통하자고 서로를 향해 부르짖기만 하고, 아무도 상대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 상황이 지금의 자화상이다. 착잡하다. 특히 정치계가 그러하다. 한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조정하여 공동체의 행복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 정치이기에, 정치인에게 원활한 소통은 기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반대편의 의견을 철저하게 무시하거나 이념 공세로 치부한다. 입을 닫고 경청하는 정치인은 극소수이다. 현대 민주주의 정치인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말이다. 말로 한 약속을 행동으로 뒷받침할 때, 그의 말은 무게를 갖는다. 약속과 실천이 선 순환하면서 쌓인 결과물이 바로 신뢰이다. 정치인에게 그보다 중요한 자산은 없다. 신뢰는 든든한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국민들은 약속을 잘 지키는 정치인에게 마음을 내어 준다. 그 중요성은 알지만 평소에는 다르게 살던 정치인은 선거 기간 동안에만 그런 척 한다. 그들의 거짓말을 그러려니 하며 당연시 여기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모든 것의 시작은 소통이다. 소통의 빈 자리에 극한 대립이 가득한 한국은 지금 불신의 병을 앓고 있다.
나는 지금 유서 깊은 베를린 필하모니 음악당에 앉아 있다. 공연을 기다리며 그들이 세계 제일의 오케스트라가 된 이유들을 생각해본다. 특히 지휘자와 단원들의 기묘한 관계를 빼놓을 수 없는데, 이 곳에서는 단원들 투표로 지휘자가 결정된다. 마치 군사들이 그들을 이끌 장수를 뽑는 듯하다. 현재 지휘자인 사이먼 래틀은 다니엘 바렌보임보다 많은 표를 얻어 이 자리에 섰다. 지휘자는 악기대신 수 십 명의 연주자들을 연주해서 악보를 음악으로 들리게 만드는데, 그 과정에서 그들 사이에 오해와 갈등은 피할 수 없다. 단원들이 다수결로 선택하여 음악에 관한 전권은 줬지만, 연주자들은 그가 시키는 곧이 곧 대로만 하지 않는다. 민주적으로 뽑힌 독재자라도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이다. 호감만으로 사랑을 이룰 수 없듯이, 지휘자는 단원들부터 장악해야 한다. 강한 리더십은 소통에서 시작된다. 그는 음악에 대한 자기 해석을 확실하게 제시해야 하며, 그 이유를 설득시켜야 한다. 이 때, 공감보다 효과적인 설득은 없다. 래틀은 음악외적으로도 단원들과 꾸준히 소통해나갔다. 실험과 파격을 거듭하는 래틀의 음악적 비전과 진정성에 공감한 후부터, 단원들은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시작했다. 지금 래틀은 전임 지휘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색깔의 소리로 베를린 필을 연주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듯 부임 초기의 불화를 래틀은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극복했다. 유창하지 못한 독일어로도 작곡가 하이든의 곡을 설명하며 농담을 던지던 오늘 밤의 래틀은, 무척 아름다웠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1주년이 지났다. 헤어진 연인은 달콤한 추억으로 남지만,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부터 민주노총 강제 진압에 이르기까지 청와대는 좋지 않았던 일들이 손안에 가득하다. 반대 의견을 개진하는 쪽의 목소리는 완전히 무시되는 듯하다. 이것이 진실이니 믿으라는 쪽과 믿지 못하겠다는 쪽의 대립이 첨예하여 물러설 곳 없어 보인다.
소통의 실패는 약자에겐 고통으로, 강자에겐 고난으로 돌아온다. 그 결과 한국 정치는 지금 갈등 증폭 장치 같다. 특히 대통령은 국민의 꿈과 행복을 말했지만, 그에 뒤따르는 행동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는 평이다. 소통의 목적은 상대를 나와 같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있다.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대통령이 먼저 소통에 나서길 바란다. 갈수록 심해지는 불통과 불신의 사회를 치유해나가길 간절히 바란다. 그것이 진정 실력 있는 지도자의 덕목이다.
이동섭 예술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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