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유상호의 f2.8] 풍장(風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유상호의 f2.8] 풍장(風葬)

입력
2014.02.19 11:16
0 0

풍장이라고 표현한 건 차창룡 시인이다.

"……자동차가 질주할 때마다 태어나는 바람이 / 고양이와 토끼와 개의 몸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 / 살쾡이의 풍장(風葬)이 열하루째 진행되고 있다."('기러기의 뱃속에서 낟알과 지렁이가 섞이고 있을 때')

장끼는 배를 부딪쳐 죽어 있었다. 피가 덜 굳었고 바퀴에 아직 밟히지 않은 깃털의 빛깔이 뚜렷했다. 감청색 대가리 아래 바람에 뒤집힌 새의 가슴털이 햇빛을 반사해 오방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대가리의 방향으로 판단컨대 개울에서 목을 축이고 산으로 돌아가는 참이었던 듯했다. 왕복 2차로 도로의 가장자리구역선을 넘어서는 순간 새의 심장은 멈췄을 것이다. 아스콘이 포설된 도로가 해의 온기를 머금고 있어서, 꺾여서 누운 새의 자리가 아늑해 보였다.

옆 페이지에 어줍잖게 안거 이야기를 썼다. 안거는 본디 인도의 풍습이다. 풀과 벌레가 왕성히 자라는 우기에 생명을 밟아 죽이는 일이 없도록, 수행자들에게 유행(遊行)을 금하고 폐문수행 하도록 정해둔 기간이다. 쌍계사 노장스님으로부터 그 말씀을 듣고 나오는 길에 저 선명한 죽음과 마주쳤다.

돌아다니며 넘치도록 보는 것은 깔려 죽고 터져 죽고 눌려 죽은 생명의 풍경이다. 도로교통법의 신호체계나 도로법에 따른 접도구역 따위는 진화의 계통수 어디에도 뿌리를 두지 않는 금족의 계율인 셈이어서, 그 계를 해독할 능력이 없는 뭇 생명에게 산하대지의 사시사철은 모두 혹독한 안거 기간일 듯했다. 파계의 대가는 죽음인데 심장이 멎은 생명이 그 계에 무애(無㝵)하다는 사실은 죽은 짐승보다 산 인간의 참혹함에 가까울 것이다.

바람이 섬진강에 윤슬을 일으키며 또 하나의 장례를 준비하고 있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