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3년마다 중기물가목표를 내놓는다. 2012년10월 설정한 작년부터 내년까지의 물가목표는 2.5~3.5%. 소비자물가가 이 범위 내에서 움직이도록 통화정책을 운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목표가 적용되기 시작한 작년 1월 이후 지금까지 13개월 동안 소비자물가가 이 범위 내에 들어온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얼추 근접해 있는 것도 아니다.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동월비)이 1.1%에 머문 것을 비롯해 이 기간 물가상승률은 0.9~1.6% 수준이었다. 물가 목표 하단(2.5%)에 못 미쳐도 한참 못 미친다. 그 이전까지 보면 소비자물가가 2.5%를 밑돈 것은 2012년6월부터 무려 20개월째다. 한은이 18일 발표한 소비자물가의 선행지표 격인 1월 생산자물가도 0.3% 떨어지며 16개월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물가는 높아도 문제이지만, 너무 낮아도 문제다. 물가가 낮은 상태가 유지되면 투자와 소비를 늦추게 되고 이것이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이는 세수 감소에 따른 경기 둔화의 악순환으로도 이어진다. 화폐 가치 상승으로 가계대출 부담도 더 커지게 된다. 물가목표의 상단(3.5%)이 있듯 하단(2.5%)이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이처럼 '목표 따로, 현실 따로'의 상황이 장기화하는 데도, 한은은 "중앙은행이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며 발을 뺀다. "지금의 저물가가 통제 가능한 수요 요인이 아니라 통제 불가능한 공급 요인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다시 말해, 농축산물이나 석유류 등의 공급 가격이 떨어지면서 이례적인 저물가가 지속되는 것인 만큼 통화정책으로 손을 쓸 수는 없는 상황이란 얘기다.
하지만 한은의 이런 태도는 2010년 지금의 중기 물가안정목표를 설정할 때의 입장과는 확연히 다르다. 한은은 2010~2012년 3년간 물가목표 범위가 2~4%였던 것을 2013~2015년 목표 범위를 2.5~3.5%로 확 줄였다. 그 때 내세운 이유는 '목표 달성을 위한 중앙은행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책임을 더 강화하겠다고 목표 범위를 축소해놓고, 지금은 한은 책임이 아니라고 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민간연구소 한 관계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은이 통제 가능한 물가가 공급 요인을 뺀 근원물가(농축산물 및 석유류 제외)라면, 왜 소비자물가를 목표 지수로 책정했는지도 논란이 된다. 실제 한은은 2000년부터 2006년까지 근원물가를 목표 지표로 삼다가 2007년부터 소비자물가로 전환했다. "전 세계적으로 근원물가를 물가 목표로 삼는 나라는 거의 없다"는 설명이지만, "그렇다면 왜 번번이 공급 요인 탓을 하느냐"는 질문에는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이러다 보니 "지금의 물가목표가 잘못된 전망에 기초한 잘못된 목표"라는 비판이 비등하다. 물가목표를 너무 높게 설정한 탓에 현실과의 괴리가 장기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한은의 지난해 물가 전망은 2.7% →2.5% →2.3% →1.7% →1.2%로 4번의 수정 과정에서 반토막도 훨씬 더 났다. 한은 전직 임원은 "경기 부양을 위해 높은 수준의 물가를 원하는 정부와 책임을 비껴가기 위해 목표를 높게 잡고자 하는 한은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목표가 높게 설정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가안정목표가 높게 책정되다 보니 매년 물가전망도 그에 맞춰 높게 설정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통화정책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물가안정목표를 손 봐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는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실장은 "우리나라 경제구조가 과거에 비해 저성장 저물가 구조에 접어들고 있다면 적정 수준의 물가가 어느 수준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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