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봄 맞을 준비해 본다. 싱그러운 소나무 숲을 거닐고, 유려한 강물 굽어보면 폐부에 각인된 겨울 흔적들 떨어진다. 빈자리는 상쾌한 솔바람, 천연한 강바람으로 채운다. 충남 공주에서 이렇게 할 수 있다. 천천히 계절이 교차하는 이 땅의 풍경이 참 고즈넉하다.
● 꽃보다 싱싱한 소나무 숲…마곡사 솔바람길
사곡면 태화산 기슭에 있는 마곡사로 간다. 백제 의자왕 3년(643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고려 명종 2년(1172년)에 보조국사가 중건한 절이다. ‘춘마곡’의 그 마곡사 맞다. 이 말처럼 봄 풍경 예사롭지 않은 곳이 여기다. 온갖 나무들마다 새순 돋고, 여린 이파리마다 빛 조각들 오글거리면, 이 모습 어찌나 화사한지, 이 때 되면 이 절은 속세가 아닌 선계의 풍경이 된다. 이제 눈이 호강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 때를 위해 이 절은 꼭 기억해 둔다.
봄은 눈부시게 화려하고, 겨울 끝자락은 헛헛함이 가득하다. 그런데 가슴 먹먹하지 않은, 기분 좋은 공허다. 텅 비었지만, 마음 꽉 채워주는 풍경은 이 무렵 산사가 주는 선물이다. 이거 느끼려면 사위 한갓진 지금 마곡사로 가야 한다.
가람들 기웃거려 본다. 대광보전의 퇴색한 단청과 꽃무늬 창살은 언제 봐도 푸근하다. 마당 한 쪽 심검당의 현판은 이맘때 유독 크게 보인다. 번뇌를 싹둑 잘라버릴 칼 찾는 일이 ‘심검’이다. 싱싱한 것들로 마음 다시 가득 채우려면 묵은 것들 먼저 떼어내야 하니, 심검이 필요한 요즘이다.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영산전에는 묵직한 시간의 무게 오롯하다. ‘안고 돌면 아들 낳는다’는 대웅보전의 싸리나무 기둥은 어찌나 반질반질한지 보고 있으면 미소가 절로 나온다. 라마교 영향 받아 독특한 장식 이고 있는 오층석탑 앞에 서면 호기심에 눈이 동그래진다.
백범 명상길도 걸어본다. 절 주변에 조성한 마곡사 솔바람길 가운데 첫 번째 코스다. 한때 마곡사에 머무른 백범 김구 선생이 산책하며 명상 즐겼다는 길이다. 1896년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이에 대한 분노로 백범은 황해도 안악에서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다. 이후 이곳으로 와서 ‘원종’이란 법명으로 출가해 잠시 수행한다. 해방 후 그는 다시 이곳을 찾아와 마당 한편에 당시를 회상하며 향나무 한 그루 심는다.
백범 명상길은 그가 머물렀다는 요사채(백범기념관)와 그가 심은 향나무에서 시작한다. 출가할 때 머리카락을 잘랐다는 ‘삭발바위’ 지나고, 산중 울창한 소나무 숲을 관통해 다시 절 마당으로 돌아온다. 거리는 약 3km, 쉬엄쉬엄 걸어 한 시간이면 완주 할 수 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당한 거리 두고 번갈아 나타나니 길은 지루할 틈이 없다. 군왕이 나올 만큼 땅의 기운데 세다는 군왕대도 볼 수 있다.
길 따라 소나무 숲이 참 울창하다. 사람들, 봄 되면 꽃에 환장한다. 이름난 꽃밭은 그래서 늘 북적인다. 이럴 때 차라리 나무 보러 가는 것이 낫다. 볕 고우면 나무들, 꽃 못지않게 싱그럽다. 바람결 따라 휘어진 이곳 나무들 자태가 기이하고 또 아름답다. 바람이 나무를 조각했다.
● 빼어난 자태 소나무 가득…고마나루
고마나루 소나무 숲도 걸어본다. 고마나루는 공주의 옛 지명, ‘고마’는 ‘넓다’는 의미다. 공주를 관통하는 금강 일대와 연미산 무령왕릉 서쪽의 낮은 구릉지대를 다 포함해 고마나루라고 했단다. 이 가운데 특히 잘 알려진 곳이 공주보 인근 소나무 숲 주변이다. 안개 자욱하면 풍경이 어찌나 고상하고 우아한지 사진 동호인이나 연인들 참 좋아한다.
한성에서 천도(475년)한 백제가 다시 부여로 옮겨가기(538년)까지 약 64년간 백제의 도성이 공주였다. 서해에서 올라온 배나 금강 상류를 오가던 배가 이 나루에다 사람과 물자를 부렸다. 금강과 어우러진 소나무 숲 너머로 백제의 영화가 아련하다.
곰사당을 지나면 소나무 숲이다. 말 그대로 곰 기리는 사당이다. 여기에 곰과 인간이 얽힌 전설이 깃들었다. 연미산 동굴에 살던 암곰이 나무꾼을 잡아 남편으로 삼고 자식을 낳았단다. 어느날 남편은 곰과 살기 싫어 도망간다. 남편을 그리워한 암곰은 새끼곰과 함께 금강에 빠져 죽었단다. 단출한 사당 안에는 곰 형상의 조각이 정말로 있다.
소나무 숲 거닐고 곰사당도 구경한다. 소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이 순하고, 흙길 제법 고실고실하니, 봄이 코 앞 인가 싶다.
●금강이 한 눈에…창벽
금강이 한 낮 볕 받아 비단처럼 반짝인다. ‘비단강’이 따로 없다. 이 강을 따라 세종시 방향으로 청벽대교까지 거슬러 간다. 공주시 반포면 마암리와 세종시 장기면 금암리를 잇는 다리다. 이 다리 인근에서 거대한 층암절벽이 느닷없이 나타난다. 창벽(청벽) 이다. 조선의 명문장가인 서거정의 애를 그토록 태운, 태풍 불어도 꿈쩍 않을 당당한 기세의 바위절벽. 그는 중국에 적벽이 있다면 조선에는 창벽이 있다고 시를 통해 우람한 창벽의 자태를 칭찬했다. 눈 내린 설경도 멋지고, 진달래꽃 피는 봄 풍경도 예쁘지만, 속살을 드러낸 이 무렵의 강인한 창벽도 아주 인상적이다.
창벽 품은 산이 창벽산(청벽산․277m)이다. 음식점 ‘청벽가든’ 앞에서 시작되는 등산로 따라 30~40분 가면 사진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금강 조망 포인트다. 등에 땀이 찰 정도가 되면 눈앞에 장쾌한 풍광이 펼쳐진다. 발 아래로 금강이 ‘S’자로 굽어지는데, 여름에는 강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해넘이 사진을 촬영할 수 있어 이들에게 특히 인기다. 해넘이 아니어도 풍경 볼만하다. 첩첩이 늘어선 산 사이를 뱀 기어가듯 금강이 크게 휘어지며 지나간다. 이 예쁜 강을 따라 곧 봄이 온다.
●밤이 더 예쁜 공산성과 금강교
어둑해질 무렵에는 금강교를 걸어서 건너본다. 산성동과 신관동을 연결하는 다리인데, 공주를 지나는 금강 유역에서 가장 먼저 놓였다. 1933년 개통됐다가 한국전쟁 때 교량의 절반 이상이 파괴되고 1956년에 다시 복구됐다. 그 유명한 공산성 옆으로 보이는 그 다리 맞다.
백제의 흔적에 가려 있지만, 공주에는 근대문화유산이 많다. 1897년 설립된 공주지역 최초의 성당인 공주중동성당, 1931년 세워진 공주제일교회 등이 대표적이다. 역사는 물론 사진에 관심 많은 이들도 즐겨 찾는 곳들이다. 금강교도 이 가운데 하나다. 공주 사람들 걸어서, 또 자전거 타고 이 다리 많이 건너다닌다. 길이가 약 500m에 불과하고, 일방통행 도로 옆으로 걸어 건널 수 있도록 공간 넉넉하게 조성돼 있다. 다리 건너며 맞는 금강의 밤바람이 기분 참 상쾌하게 만든다. 다리에선 공산성의 야경도 보인다. 밤에 조명이 켜지니 이 모습 고스란히 금강에 반영된다. 다리 건너니 공산성 금서루에 달이 둥실 떴다. 낮에 보는 것보다 은근한 멋이 서너배는 더하다.
공산성은 백제시대 축성된 산성이다. 웅진 백제의 중심이었다. 백제 왕궁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도 여기다. 사방의 누각 가운데 금서루는 서쪽 문루다. 달밤 정취는 고요한데, 산성에 깃든 역사는 치열하다. 조선 인조는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로 피난 왔다가 이곳에 잠시 머물렀다. 이것 기념해 세운 정자가 쌍수정이다. 영은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 훈련소로 사용된 절이다. 백제의 연못 터도 산성 안에 있다.
마곡사와 함께 이곳도 기억해 둔다. 성곽길은 신록 고울 때 산책하기 딱 좋다. 성곽의 총 길이가 2,660m. 길 따라 가면 공주 시내도 조망할 수 있고 예쁜 금강도 내려다 볼 수 있다.
금강 흐르고 늘 푸른 소나무 있는 공주가 포근한 이불 같다.
●여행메모
△ 봄방학 맞은 아이와 함께 간다면 국립공주박물관과 무령왕릉이 있는 송산리고분군을 여정에 포함한다. 박물관에는 국보와 보물을 포함한 중요 유적을 전시 중이다. 송산리고분군은 웅진 백제의 왕들과 왕족들의 무덤으로 알려졌다. 1971년 5호 석실분과 6호 전축분에 사이에서 배수로 공사를 하던 중 백제 22대 무령왕의 릉이 우연히 발견됐다. 공주관광안내소 (041)856-3151
△ 먹거리: 대파를 고명으로 얹는 공주국밥이 있다. 금성동의 새이학가든(041-854-2030)은 60년 넘은 집이다. 공주국밥 8,000원. 공주 사람들은 칼국수 즐겨 먹는단다. 칼국수 집도 많다. 중동의 고가네칼국수(041-856-6476)가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집이다. 칼국수 1인분 6,000원이다. 신관동 동해원(041-852-3624)은 짬뽕이 유명하다. 마니아들은 이곳 짬뽕을 ‘전국 5대 짬뽕’으로 꼽는다. 짬뽕 7,000원.
△ 잠잘곳: 웅진동에 공주한옥마을이 있다. 가족, 연인들 묵기 아주 좋다. 2~6인실, 단체실 등 방 종류 다양하다. 2인실 5만~7만원, 3인실 13만~15만원, 4~5인실 10만~12만원이다. 공주한옥마을 홈페이지에서 공주사이버시민으로 가입하면 약 30% 할인 받을 수 있다. 공주한옥마을 (041)840-8900
마곡사는 1박 2일 일정으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한다. 특별한 프로그램 없이 푹 쉴 수 있는 휴식형(일~금요일)과 예불, 포행 등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는 체험형(토~일요일)이 있다. 휴식형은 성인 4만원, 초·중·고등학생 3만원, 체험형은 성인 6만원, 초·중·고등학생 5만원이다. 마곡사 템플스테이 (041)841-6226
공주=글ㆍ사진 김성환기자
[사진설명] 마곡사 옆, 백범 명상길을 따라 가면 맑은 계류를 만난다. 이 물길 따라 매서운 겨울이 저만치 물러가고 있다. 헛헛하지만 결코 가슴 먹먹하지 않은 풍경. 계절 교차하는 이맘때 산사가 주는 예쁜 선물이다.
한국스포츠 김성환기자 spam001@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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