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탐욕으로 악행 저지르는완전하지 못한 인간의 군상 담아관객에 죄의 본질과 근원 질문후반으로 갈수록 장의 시간 짧아파국 치닫는 긴장감 더하고무채색·간결한 무대 장식으로위태로운 인간 심리 돋보이게"맥베스가 느끼는 두려움 커질수록 더욱 잔인해지는 죄의 향연그게 인간의 어리석음 아닐까요"
올해 연극계의 가장 큰 관심사는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탄생 450주년이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2016년이 그의 서거 400주년이 되는 해이니만큼 앞으로 3년 동안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을 볼 기회가 많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국립극단이 내달 8일부터 23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리는 이병훈 연출의 연극 '맥베스'는 '셰익스피어를 기념하는 3년'을 여는 개막작이라 할만 하다. '450년 만의 3색 만남'이라는 이름의 국립극단 셰익스피어 기획 무대의 첫 작품으로, 그의 4대 비극 중 가장 화려하고 강렬한 전개로 유명하다. 시적이고 아름다운 언어가 가득해 가장 왕성하게 현대화 작업이 이뤄지는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이다. 죄를 잉태하는 씨앗을 욕망과 어리석음으로 해석하면서 선과 악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완전하지 못한 인간 군상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왕권을 빼앗기 위해 악행을 이어가는 맥베스 역의 배우 박해수(32), 그의 뒤에서 온갖 죄의 불씨를 키워내는 아내 레이디 맥베스 역의 배우 김소희(44)를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앞마당에서 만나 '맥베스'가 보여줄 죄와 욕망의 복잡한 함수관계를 들어봤다.
덩컨왕과, 가장 친한 친구 뱅코를 무참히 베어낸 맥베스. 맥베스는 세 마녀의 예언에 의지해 저지른 행동이라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그런 그를 아내는 계속 부추긴다.
"시인의 마음을 가진 살인자가 아닐까요. 그의 독백은 셰익스피어의 모든 대사 가운데 가장 문학적이란 평가를 받아요. 악행을 범하지만 그 순간 또 다르게 성찰하는 남자예요. (살인 후)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지만 다시 파괴를 향해 달려가 끝을 보는 인물이기도 하고요."(김소희)
"욕망이 가득한 남자겠죠. 심리 변화가 요동치고 강직한 장군이지만 아내와 욕망 앞에서는 흔들리는 사람. 광야에서 그토록 많은 살인을 했지만 언제나 악행 앞에 두려워하고. 하지만 아내의 죽음 이후 정신적인 성장을 이뤄내는 인물이죠."(박해수)
극은 파국으로 향할수록 각 장의 시간을 짧게 하는 방식으로 긴장감을 보탠다. 악행 때문에 패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거기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맥베스 부부는 욕망의 구렁텅이에서 발을 빼지 못하는 현대인을 빼다 박았다. "맥베스의 아내는 앞만 보는 인물입니다. 덩컨왕만 죽이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미망에 사로잡혀 일을 저지르지만 곧바로 무너집니다. 요즘 일어나는 살인 사건도 단순한 욕망 앞에 무너진 결과라고 할 수 있겠죠. 관객이 냉혈한 인물인 레이디 맥베스를 보면서 '저 여자 왜 저러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도록 하려고요. '인간이 어째서 어리석음 때문에 살인을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요. 맥베스 부부는 사람을 죽인 후부터 서로 고독해져요. 너무나 뜨거운 사랑이 악행의 원인일까요?"(김소희)
연극 '맥베스'는 시종일관 죄의 본질과 근원에 대해 질문한다. 욕망에 무너져가는 주인공들의 최후를 보며 객석은 끝없는 궁금증에 휩싸인다. "감독님(이병훈 연출)은 신을 빼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고 해요. 신의 부재가 인간의 헛된 욕망을 불렀다는 것이지요. 죄의 근원이라. 운명과 성격 두 요소가 합쳐졌겠죠. 맥베스의 악성을 사탄(세 마녀)이 건들고 아내가 불 붙이지만 실행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린 것입니다. 맥베스는 '죄야, 나에게 오라'면서 악마를 불러들이기까지 해요. 칼을 받을 마음의 준비를 한 후 궁지에 몰린 그는 '시튼'이란 부하를 찾는데 그 부하가 바로 '사탄'이 아닐까요. 맥베스는 아내가 죽은 뒤에야 죄를 자각해요. 사탄의 음모라는 것도 깨닫지만 빠져 나오지 못하죠."(박해수)
신선희 무대 미술가가 꾸미는 '맥베스'의 무대 공간은 인간의 위태로운 심리를 보여주기 위해 심플하면서 활용도 높게 만들어진다. 난간과 다리, 계단이 있고 철골 구조물과 철망이 설치된다.
검은 가죽 점퍼의 맥베스, 어두운 녹색 드레스의 레이디 맥베스. 무채색의 무대는 유독 세 마녀에게만 원색을 허용한다. 더러운 예언을 내뱉는 악행의 도발자인 마녀들에게 연출은 특별히 공을 들였다. "상당히 미인(배우)들로 뽑았어요. 농염하면서 어리지 않고, 인간을 유혹하며 정신을 빠지게 하는 건강하지 못한 존재로 그립니다. '맥베스'에서는 마녀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큰 숙제고 그래서 가장 정성을 쏟는 배역이죠."(김소희) "마녀는 누굴 죽이라고 말하지도, 예언하지도 않아요. 맥베스가 머릿속에서 살인을 떠올릴 뿐이죠. 마녀들은 악행의 핑계 장치에 불과해요."(박해수)
극의 핵심 오브제는 왕관이다. 맥베스의 왕권을 상징하는 이 물건은 무대 위 종이 왕관의 모습으로 깔린다. 욕망의 다른 외형, 왕관을 둘러싼 죄의 향연은 잔인하다. "맥베스의 두려움이 커질수록 살해 장면은 잔혹하게 그려질 것입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의 파멸이니까요."(박해수)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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