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는 2014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 중 하나였다. 5명(후보 1명)의 기량이 엇비슷했고 올 시즌 월드컵에서도 잇달아 금메달을 수확해 대표팀의 사기도 높았다. 소치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여자 계주 대표팀은 18일(한국시간) 오후 러시아 소치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대회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에서 4분09초498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6년 토리노 대회 이후 8년 만의 이 종목 제패다.
역대 최고의 구성, 완벽한 신구 조화
최광복 여자 대표팀 코치는 대회에 앞서 “이번 계주팀 멤버 구성은 역대 최고”라고 자신했다. 심석희(17ㆍ세화여고)-김아랑(18ㆍ전주제일여고)-박승희(22ㆍ화성시청)-조해리(28ㆍ고양시청)의 ‘최강 조합’부터 준결승에서 활약한 공상정(18ㆍ유봉여고)까지 역할 분담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최 코치는 “큰 실수만 없다면 충분히 금메달을 노려볼 수 있다”며 “언니, 동생 사이의 믿음이 끈끈하다”고 말했다.
조해리, 박승희는 끔찍한 밴쿠버의 악몽을 경험한 당사자들이다. 여자 계주에서 1위로 골인하고도 석연치 않은 심판 판정 탓에 메달을 놓쳤던 4년 전의 아픔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다. 이들은 대회에 앞서 끊임없이 후배들에 조언하며 큰 무대를 대비토록 했다. 서로를 이해하고 아끼며 완벽한 신구 조화를 이끌었다. 무엇보다 500m에서 16년 만의 동메달을 따내 대표팀의 메달 물꼬를 튼 박승희는 오른 무릎 부상에도 다시 경기에 나서 팀에 투지를 불어넣었다. 김아랑, 심석희 등 후배들은 언니들의 투혼과 배려에 힘입어 겁 없는 레이스를 펼치며 금메달이라는 값진 결과물을 얻었다.
막내의 거침없는 질주, 압도적인 심석희
27바퀴를 도는 이번 레이스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한 바퀴였다. 대표팀 에이스 심석희의 강심장과 체력이 단연 빛났다. 심석희는 2012~13시즌부터 올 시즌 월드컵까지 단 한 차례도 빼놓지 않고 최소 1개 이상의 금메달을 수집해 ‘차세대 쇼트트랙 여왕’으로 불린다. 신체 조건이 175㎝, 55㎏으로 유럽 선수들 못지 않고, 레이스 막판 체력은 웬만한 남자 선수와 맞먹어 다른 모든 국가가 견제하는 세계 1인자다.
이날도 마지막 두 바퀴를 책임지는 2번 주자로 나서 반 바퀴를 남기고 중국의 리젠러우를 제치며 한국에 값진 금메달을 안겼다. 긴 다리를 이용해 성큼성큼 속도를 붙인 그는 마지막 코너를 파고들면서 바깥쪽으로 크게 돌아 전세를 뒤집었다. 앞서 1,500m에서 경험 부족을 노출하며 저우양(중국)에게 막판 추월을 허용했던 심석희는 경기 후 “1,500m 때보다 더 적극적으로 하려 했다. 언니들이 옆에서 많은 응원을 해줘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며 “‘나갈 수 있다. 할 수 있다’고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잇단 악재 쇼트트랙, 모처럼 웃었다
쇼트트랙 대표팀은 이번 올림픽을 치르면서 끊임 없는 악재에 시달려왔다. 개막 전 장비 담당 코치가 성추행 의혹으로 직위 해제됐고, 대회 중에는 안현수(29ㆍ러시아명 빅토르 안)의 아버지 안기원 씨로부터 불거진 빙상연맹의 파벌주의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런 와중에 성적 부진까지 겹치면서 한국 대표팀은 웃는 날이 없었다. 출발선에 서기 전부터 위축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이날 얻은 값진 금메달로 마침내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메달 갈증을 털어 버렸고 마음고생도 한 방에 날렸다. 한국은 남은 남자 500m, 여자 1,000m에서 추가 메달을 노린다. 함태수기자
한국스포츠 함태수기자 hts7@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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