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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의회 '도둑맞은 아이들' 결의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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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의회 '도둑맞은 아이들' 결의안

입력
2014.02.1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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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 동쪽으로 200㎞ 가량 떨어진 조그만 레위니옹 섬(면적 2,512㎢)은 1946년 프랑스에 해외영토로 편입된 곳이다. 레위니옹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던 여섯 살 소년 장 자크 마샬은 1965년 11월에 반바지에 슬리퍼만 신고 파리 오를리공항에 도착했다. 프랑스 정부가 본토의 지방 인구가 감소하자 인구를 늘리기 위한 방법으로 레위니옹의 아이들을 데려온 것이다. 마샬은 프랑스 중부 크뢰즈 지역에서 농사일을 하던 한 노부부에게 입양됐다. 생면부지의 가정에서 양아버지한테 학대를 받아가며 외롭게 성장한 그는 "언젠가 이 일을 고발하겠다"는 다짐으로 힘든 하루하루를 버텼다.

마샬의 바람이 곧 이루어질지 모른다. 프랑스가 해외영토 레위니옹에서 어린 아이들을 강제 이주시킨 부끄러운 역사를 청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국회는 1960,70년대 국가가 레위니옹 어린이들을 본국으로 강제 이주시킨 사실을 인정하는 결의안을 18일 표결에 부칠 예정이라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는 해외영토 이민개발국이 주도해 1963년에서 1982년까지 레위니옹 섬 아이들 1,615명을 본국의 시골에 강제 이주시켰다. 당시 인도 노동자, 중국 상인 등이 몰려오면서 레위니옹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이 섬의 아이들을 데려와 인구가 감소하던 본국 시골지역을 메우겠다는 생각이었다.

정부는 아이들 대부분을 크뢰즈 지역으로 보냈다. 아이들은 중ㆍ상류층 가정의 하인이 되거나 농장에서 일했다. 어린 나이에 고된 일상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정신병원에 억류된 아이들도 있었다. 1966년 9월 열 두 살의 나이에 크뢰즈 지역 규에헤로 온 피해자 시몽은 "제대로 말할 줄 모르는 세 살 먹은 어린 아이도 있었다"며 "인구감소 해결책으로 강제이주를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인권은 완전히 무시됐다"고 비판했다. 결의안 발의자 중 한 명인 레위니옹의 에리카 바레이 의원은 "(정부가) 가난하고 문맹인 가정에 '아이들을 프랑스로 보내겠다'고 통보했을 때 부모들은 수도 파리의 에펠탑과 개선문을 상상했다"며 "(부모들에게) 집과 학교교육을 약속하고, 휴일에는 아이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모두 거짓말이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2002년 프랑스에서 큰 이슈로 부각됐었다. 피해자인 마샬(55)이 미성년자 납치 및 격리 등의 혐의로 국가를 고소했던 것. 그는 당시 10억 유로(1조4,600억원)의 배상을 요구했다가 공소시효 만료로 패소했지만, 르피가로, 르몽드 등 프랑스 유력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마샬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정부의 만행을 널리 알렸고 자신의 삶을 적은 책 을 출간했다. 책 출간 이후 레위니옹의 피해 어린이들은 '도둑맞은 아이들'로 불리게 됐다.

결의안은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강제이주를 비판하고, 국가가 피해자들과 화해하도록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디언은 "결의안이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지는 않았으나 무거운 도덕적 책임을 지우게 한다"고 전했다.

강제이주 정책을 반성한 예는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호주 정부는 원주민인 애보리진을 동화시키기 위해 1890년대부터 80년간 애보리진의 아이들을 빼앗아 백인 가정에 강제 입양시켜왔다. 2008년 호주 정부는 공식 사과했다.

한창 식민지 개척에 나섰던 영국은 1869년 어린이 이주 정책 '홈 칠드런'을 시작해 본토의 아이들 10만명을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캐나다 등에 보냈다. 가난한 아이들이 기회의 땅에서 일하고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당시에도 아이들을 책임진 가정이 그들을 착취한다는 소문이 돌아 영국에서 조사단이 파견돼 실사를 하기도 했다. 2010년 2월 고든 브라운 당시 영국 총리는 "아이들을 상대로 한 부끄러운 일"이었다고 공식 사과하고, "피해자 가족 보상을 위해 600만파운드(106억원)의 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17일 영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각색상을 수상한 영화 '필로미나의 기적'은 가톨릭 교회에 의해 강제로 아이들을 뺏긴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캐나다는 2010년을 자국으로 강제 이주된 영국 아이들의 해로 정하고, 그 해 9월에는 아이들을 기념하는 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캐나다 이주정책을 담당하는 제이슨 케니 장관은 "캐나다로 강제 이주된 영국 아이들 문제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슬픈 역사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동안 사회의 큰 관심사도 아니었고 정부까지 나서서 사과할 필요는 없다"며 공식 사과를 거부한 바 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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