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군국주의의 회귀를 꾀하는 우익인사로 평가한다. 하지만 정작 일본 내에서는 집단적 자위권, 헌법해석 변경 등 아베가 추진하는 군국주의적 시도가 그다지 부각되지 않고 있다.
취임 직후 60%대이던 아베의 지지율은 무제한 양적 완화를 비롯, 아베노믹스가 본격 가동되던 지난해 4월 70%대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 특정비밀보호법을 무리하게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40%대까지 떨어졌지만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우익세력 결집에 성공해 현재까지 50%대의 무난한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아베의 지지율이 취임 후 1년 동안 높은 비결은 아베노믹스, 제1야당 민주당의 몰락 등 외부 요인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인사'를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는다. 아베는 2012년 12월 정권 출범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장관도 교체하지 않았다. 한번 기용한 인물에 무한 신뢰를 보낸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대의와 명분을 중시하는 일본 사회에서 장점으로 부각된다.
아베는 내각에 자신의 측근뿐 아니라 다소 불편한 경쟁관계의 인사도 대거 등용했다. 대표적인 측근으로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을 꼽는다. 특히 일본 정부의 대변인인 스가 장관은 아베 총리의 사실상 가신 역할이다. 스가 장관은 당초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를 극구 만류했으나, 일단 참배를 강행하자 아베를 적극 두둔하는 등 가신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아베와 역사관이 비슷한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문부과학장관은 교과서 개정을 통해 아베 사상을 교육현장에 주입하기 위한 선봉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아베 총리는 정치적 경쟁자들을 자신의 곁에 두고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능력도 발휘하고 있다. 2012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대립각을 세웠던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와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를 각각 환경ㆍ원전장관과 농림수산장관에 발탁했다. 이들 부처는 아베가 추진 중인 원전재가동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체결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쪽이어서 장관들의 운신의 폭이 자연히 좁을 수밖에 없다. 아베는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이시바 시게루(石茂幹)에게는 자민당 간사장을 맡기면서도 모든 정국을 총리실 위주로 운영해 그가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
아베는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자신의 견해에 반대하는 기관장은 과감히 교체했다. 아베노믹스 실현을 위해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를 기용했고, 집단적 자위권 헌법해석 변경을 이끌어 내기 위해 고마쓰 이치로(小松一郞) 전 프랑스 대사를 내각법제국 장관에 앉혔다. 모미이 가쓰토 NHK회장은 아베의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시나리오의 일환으로 발탁된 인물이다. 모미이 회장이 위안부 망언으로 사임 위기에 몰렸을 때 총리가 나서서 보호막이 돼 준 것은 '내사람 챙기기'의 전형이다.
하지만 아베의 인사 스타일이 한계에 달했다는 지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전 재무장관 등 중진의원들이 최근 잇따라 아베 때리기에 나서는 것은 그의 독선적 인사에 대한 쌓였던 불만들이 터져 나온 것이다.
지난해 4분기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0.3%로 기대에 못 미쳤고 1월 경기상황판단지수도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처음 50이하로 떨어져 그늘을 드리웠다. 순풍을 맞으며 아베의 지지율을 떠받쳐온 아베노믹스에 대한 불안감까지 서서히 불거져 나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아베 총리가 자기 생각대로 인사를 밀어붙일 수 있었던 건 사실상 아베노믹스의 성공 덕분인데 이것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겉잡을 수 없는 후폭풍이 닥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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