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9시 6분쯤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천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순간 고 양성호(25ㆍ부산외대 미얀마어과 4)씨는 체육관의 유리창을 깨고 탈출했다. 부산외대 아시아어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행사에 참가한 후배들과 함께였다. 하지만 양씨는 한 숨 돌리기 무섭게 무너진 체육관 잔해 사이로 다시 기어들어갔다. 아비규환으로 변한 체육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후배들의 비명소리를 지나칠 수 없어서였다. "조금만 버텨"라며 후배들의 탈출을 돕던 양씨는 결국 완전히 내려앉은 철골더미 사이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해병대 출신으로 복학해 학과 대표를 맡고 있었던 양씨는 주변에서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 사람"으로 통했다. 친구 조정호(25)씨는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찾던 친구"라며 "학과 대표로 후배들 챙길 생각에 밤잠 못 이루던 친구였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불과 일주일 전인 13일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며 고민을 나눴다는 친구 김민찬(25ㆍ부산외대 태국어과 4)씨는 "(성호는) 오지랖이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다른 사람 챙기기에 적극적이었다"며 "해병대 제대하고 1년 동안 학비 모으느라 이제 막 복학해서 하고 싶은 일이 많았는데 성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양씨의 시신은 부산 침례병원에 안치됐다.
태국어과 학과 대표였던 고 김진솔(20ㆍ여)씨도 같은 학과 후배들의 탈출을 돕느라 정작 자신의 생명은 지켜내지 못했다. 김씨는 지붕에 깔려 크게 다친 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어머니와 통화했다. 김씨의 고모 김월선(58)씨는 "진솔이가 통화에서 '아프다'며 신음했다고 하더라"며 "전화가 끊긴 후 통화가 되지 않아 가족들이 걱정했는데, 사망자 명단에서 진솔이 이름을 보고 억장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고모 김씨는 "진솔이는 학비도 백화점 아르바이트로 직접 버는 등 부모 속 한 번 썩인 일이 없던 착한 딸"이라며 "내년에 전공을 살려 태국으로 유학갈 생각에 들떠있던 아이였는데…"라며 오열했다. 김씨의 아버지 김판수(53)씨는 시신이 안치된 울산 21세기병원의 임시분향소에서 "우리 솔이 잘가…"라며 딸의 영정을 연신 쓰다듬었고, 김씨의 어린 동생(10)은 천진난만한 표정이어서 보는 이들의 가슴을 더 아프게 했다.
경주 리조트 붕괴사고 사망자 총 10명의 시신이 나눠 안치된 임시분향소들은 18일 유가족들의 오열로 가득 했다. 특히 10명 중 6명의 시신이 안치된 울산 21세기병원 임시분향소는 이날 아침부터 사망자의 유족과 친구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
정치인들의 조문도 이어졌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 안철수 새정치연대 의원 등이 유족을 찾아 위로했다. 안 의원은 유족들 앞에 무릎을 꿇고 "참담한 마음으로 왔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회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판수씨는 "두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딸이 마지막 희생이길 바란다"고 답했다. 하지만 안 의원이 "생각보다 현장이 좁아 더 큰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말한 데 대해 트위터 등에서는 "얼마나 더 생명을 잃어야 큰 사고냐"는 비난이 잇따랐다. 일부 유가족들은 "정치인들은 필요 없으니 나가달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이웅렬 코오롱 회장은 이날 오전 마우나리조트 현장 지휘소를 찾아 "부상자와 가족에게 엎드려 사죄한다"고 밝힌 데 이어 이날 낮 12시 58분쯤에는 유족들에게 사과하기 위해 임시분향소를 찾았다. 하지만 유족들의 외면으로 도망치듯 발길을 돌렸다. 이 회장은 고인 위패에 헌화하기 전 취재진들에게 "사고 원인은 아직 모르겠다"며 "(유가족을 위해서) 뭐든지 할 수 있는 것은 다하겠다"고 말했다.
울산=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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