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선 새벽·야간에도 즐기는 골프… 형광색 입힌 컬러볼 고안 계기 돼필드에서 캐디 입소문 타고 급성장… 1년 만에 점유율 3%서 30%로세계 최대 업체보다 고가 고수… 美 1000개 골프숍에 진출고품질에 매년 200억 이상 팔려국내 골프인구 300만명에 육박… 세계 정상급 한국선수도 많아국민과 정부가 돕고 응원해 주면 명품 브랜드로 성장 경쟁력 충분올해 볼빅 레이디스 마스터스 타이거 우즈 사촌동생이 우승하며美 전역에 이례적 생방송 홍보 대박
'골프의 성인' 보비 존스나 역대 최고의 골프 작가 버나드 다윈도 컬러 골프공 시대가 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이들이 살아 있다면 컬러공 시장을 선도하는 곳이 골프 후발주자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을 것이다.
소치 동계 올림픽 열기에 다소 묻히긴 했으나, 최근 골프 관련 빅 뉴스 하나가 있었다. 국산 골프공 제조업체 볼빅 후원으로 9일 호주에서 막을 내린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볼빅RACV 레이디스 마스터스에서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의 사촌동생 샤이엔 우즈(24)가 우승했고, 이 경기를 미국 골프채널이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 생중계한 것이다. 우리나라 골프 용품 업체가 타이틀 스폰서를 맡은 대회를 미 골프채널이 중계한 건 처음이다. 미 골프채널은 샤이엔 우즈가 2라운드부터 공동 선두로 나서면서 우승 가능성이 커지자 생중계를 긴급 편성했다. 국내 골프계에선 "컬러공을 만드는 볼빅이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고 평가했다. 현장을 찾았던 문경안(56) 볼빅 회장은 "뜻밖의 선물을 받은 느낌이어서 한동안 멍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20가지 형광 색깔의 국산 컬러공으로 '골프공 신화'를 쓰고 있다. 전 세계와 국내 컬러 골프공 시장에서 볼빅의 점유율은 80%선. 이쯤 되면 '평정' 이다. 불과 5년 만에 이뤄낸 업적이다. 비거리와 내구성, 방향성 등에서 뛰어난 성능이 입증되면서 미국여자프로골프투어(LPGA)에서 뛰고 있는 외국 선수 12명이 볼빅공을 사용하고 있고, 국내에선 KPGA와 KLPGA 소속의 15명이 쓴다.
문 회장을 주목하는 이유는 세계 골프공 시장에서 미국ㆍ일본산에 밀려 을(乙)이었던 한국을 갑(甲)의 위치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고품질에 고가 전략으로 '국산공= 싸구려공' 이미지를 불식시켰다. 그는 "국산 골프공이야말로 스포츠 한류를 대표할 명품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컬러공은 얼마나 팔렸나요.
"2009년 볼빅 인수 후 작년까지 1,000억 원 정도 판 것 같아요. 매년 200억 원 이상 팔았고, 작년엔 310억 원 매출을 올렸어요."
-이익도 많이 남겼겠네요.
"뭐, 그렇진 않아요. 프로 선수 후원 같은 마케팅 비용 등으로 많이 썼지요. "
-매출 대비 마케팅 비중이 너무 높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국내 1위 자리에만 머물 순 없는 일 아닌가요. 전 세계에 인지도를 높이려면 과감히 투자 해야지요."
볼빅 인수는 순전히 우연이었다. 철강유통업을 하던 문 회장은 지인으로부터 "골프공 만드는 회사를 인수할 생각 없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골프를 좋아했기에 구미가 당기더군요. 실사 해보니 도전해볼 가치가 있었어요. 그래서 회사를 사들였지요." 하지만 인수 후 사정은 달랐다. 수출은 적자를 면치 못했고, 국산공을 대하는 시장과 소비자들의 시선은 냉랭했다.
-형광 컬러공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왔나요.
"우리나라는 어두컴컴한 새벽이나 야간에 골프를 많이 치잖아요? 저도 야간 골프를 하면서 흰색공을 잃어버린 적이 많았어요. 어느 날 야간 라운딩을 나갔는데, 그때 '색깔 있는 공이면 잘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형광 컬러공 개발은 이렇게 시작됐다. 충북 음성 공장에 형광 소재로 만든 컬러공 제작을 지시했고, 야간 라운딩 때 들고 나가 시연을 반복했다. 기실 골프공 마케팅은 입소문이 좌우하기도 한다. '필드의 마케터'인 캐디의 반응은 그래서 중요할 수밖에 없다. 문 회장은 캐디들을 상대로 국산 컬러공의 편리성과 우수성을 직접 홍보했고, 이게 적중했다.
-매출이 얼마나 오르던가요.
"컬러공 출시 한 달 만에 매출이 15%나 늘었어요. 컬러공이'일'을 낼 거라는 느낌이 오더군요. 곧바로 프로 골퍼들에게도 볼을 지원했지요."
그의 동물적인 마케팅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프로들이 국산볼을 안 쓴다면 매출에 한계가 있을 거라고 본 것이다. 그는 "무역업과 철강유통업을 하면서 쌓였던 노하우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2010년 한 골프 대회에서 볼빅공으로 우승하면 현금 1억 원, 예선을 통과하면 200만 원, 사용만 해도 50만 원을 주겠다는 베팅을 했는데, 8명이 볼빅공을 선택했다.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 골프공 시장 공략에 나선 건 2012년 11월이었다. 국내 골프계에선 "모험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빠른 시간 안에 연착륙했다. 현재 미 전역 1,000곳의 舟좁璨【?볼빅공을 판다. 올해엔 이 숫자를 2,50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미국인들은 컬러공 인지도가 낮은 편 아닌가요.
"그랬었죠. 근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컬러공 인기는 급상승하고 있어요. 컬러공을 쓰는 LPGA 선수가 적지 않고, 이들이 좋은 성적을 낸 게 힘이 됐어요. 미국의 골프전문잡지가 골프를 치는 미국인 대상으로 얼마 전 조사한 결과가 있어요.'볼빅 컬러공을 알고 있다'는 대답이 94%나 됐어요. 이들 중 상당수가 잠재적인 컬러공 수요층이라고 할 수 있지요."
역발상이 전매 특허인 그는 국내처럼 미국이나 일본 및 동남아 시장에서도 고가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볼빅공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A사 제품보다 비싸다. 문 회장은 "한국산 골프공은 싸구려 저가라는 인식은 마케팅에 독약과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컬러공은 흰색공에 비해 거리가 안 나거나 스핀이 덜 먹는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테스트에서 확인됐어요. 얼마 전 국내 방송에서 컬러공과 흰공의 성능을 과학적으로 시험했더니 거리가 거의 비슷하게 나왔어요.'컬러공은 덜 나간다'는 얘긴 근거 없음이 입증됐습니다."
골프공 성능은 기술력에 비례한다. 볼빅의 기술 인프라는 유수의 다른 업체에 뒤지지 않는다. 골프공 연구개발(R&D) 전문 인력만 6명이고, 코어(중심핵)와 커버 제작 관련 원천기술을 보유하는 등 40여 개 특허도 갖고 있다. 이런 기술력이 있었기에 컬러공 출시 1년 만에 국내 골프공 시장 점유율을 3%에서 30%로 끌어 올린데 이어, 세계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었는지 모른다.
'컬러 맨'의 목표는 향후 4~5년 안에 흰색공 생산을 병행하면서 세계 골프공 시장 판도를 바꾸는 것이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떤 분야든 기업 혼자 힘으론 세계 정상이 난망한 까닭이다. 그래선지 몰라도 문 회장은 국내 유명 프로 골퍼와 정부에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우리나라 유명 프로들은 왜 국산공을 쓰지 않나요.
"개인주의 경향이 너무 강해요. 우승한 뒤 태극기 흔든다고 애국자라고 할 수 있나요. 프랑스 선수들은 자기 나라 제품 옷만 입습니다."
그러면서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미 PGA에서 뛰고 있는 한국 선수에게 국산공을 쓸 수 없느냐고 했더니 30만 달러를 요구하더군요. 그 선수는 3만 달러를 받고 경쟁사 제품을 쓰고 있었는데 국산 제품을'호구'로 본 거죠."
골프는 세계 수준에 도달한 한국 선수가 가장 많은 종목이다. 단일 스포츠로 세계 대회에서 1년에 10승 이상을 올린 적도 있으니, 틀린 얘기가 아니다. 문 회장은 이를 언급하면서 "이젠 정부가 골프를 '스포츠 한류'로 이끄는 데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어떤 도움을 줘야 할까요.
"골프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지요.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들이 외국 손님들한테 성능 좋은 국산공을 놔두고 수입공을 선물하고 있어요. 코미디지요. 골프공 연구개발을 위해 예산 지원을 요청했더니'골프는 안 된다'고 하더군요. 골프가 산업의 한 축이고,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는 걸 안다면 이렇게는 못할 겁니다."
-돈벌이에만 급급한 골프 업계의 잘못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부분이 있지요. 그렇지만 골프 인구가 300만 명에 육박할 만큼 대중화했고, 한국의 스포츠를 대표하는 종목으로 크고 있는 상황을 당국이 도외시하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죠. 정부가 외면하는 산업이 어떻게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어요. 정부 지원 없이 우리 골프 산업이 이만큼 성장한 것도 기적입니다."
그는 국산 골프공을'명품 스포츠 브랜드'로 키울 작정이다. 명품 스포츠 브랜드 소유 여부가 미래 선진국을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믿기 때문이다.
-명품 스포츠 브랜드 파워가 왜 중요한지요.
"스포츠 용품 기술은 많이 평준화 돼서 열심히 하면 1년 만에 따라잡을 수 있지만 명품 브랜드는 그렇지 않아요. 골프 업계에만 맡겨선 안 돼요. 정부와 국민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국산 골프공은 절대로 명품 브랜드가 될 수 없어요. 삼성전자 스마트폰과 현대ㆍ기아차가 혼자 잘 나서 세계적인 명품이 됐나요."
그러고 보니 문 회장이 고가 마케팅을 밀고 나가는 것도 명품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려는 전략으로 여겨졌다. 품질을 뛰어 넘어 명품 이미지 굳히기에 나서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무리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골프공이라도'메이드 인 타일랜드'가 '메이드 인 코리아'보다 비싸다는 건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거죠. '메이드 인 코리아'의 경쟁력이 명품 브랜드로 이어져야 합니다."
/인터뷰= 김진각 오피니언담당 부국장 겸 선임기자 kimjg@hk.co.kr
김진각 선임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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