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업계의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운명의 3개월'이 시작됐다. 사상 최대 규모의 고객정보를 유출한 KB국민, 농협, 롯데카드 등 카드 3사에 영업정지 조치가 시작된 17일. 파장을 최소화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영업정지 카드사들과 이 기회를 어떻게든 활용해 보려는 다른 카드사들간에 명암이 극명히 엇갈렸다.
영업정지 첫날을 맞은 카드 3사 직원들은 사실상 일손을 놓았다. 롯데카드 소속 카드모집인 김모(45)씨는 회사 출근과 함께 영업을 나갔던 평상시와 달리 이날은 하루 종일 사무실에 붙어 있었다. 그는 "오전에 출근해서 종일 본사 지침만 기다렸다"며 "영업정지 동안 가맹점에 '롯데카드' 딱지를 붙이는 등 부수업무를 하는 조건으로 임금을 보전해주겠다는 소식만 들었다"고 말했다. 국민카드 소속 카드모집인 박모(42)씨도 "하루 종일 기존 가입고객들에게 사정 설명을 하는 전화를 돌린 게 업무의 전부였다"고 말했다.
고객들의 불편은 상당했다. 이날 오전 국민은행 무교동지점을 방문한 회사원 한 회사원은 "지난달 카드값이 많이 나와서 리볼빙 신청을 하려고 했는데 서비스 이용이 안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답답해했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내 롯데카드 고객센터를 방문한 50대 주부도 "정보 유출로 지난달 카드를 해지했는데 쇼핑 때 할인을 못 받아서 재발급을 신청하러 왔다"며 "하지만 카드 발급을 거절당해서 다른 카드사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카드사들은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KB국민카드는 현금서비스 이용을 장려하기 위해 금리와 수수료를 대폭 인하했고, 롯데카드는 결제금액이 많은 고객에게 캐시백을 돌려주는 이벤트에 돌입했다. 농협카드는 전 업종 무이자 할부 혜택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한 번 떠난 고객을 다시 잡기는 상당히 힘들다"며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어떻게든 이탈 고객들을 잡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다른 카드사들에는 "두 번 다시 찾아오기 힘든 기회"라는 인식이 파다하다. 당국의 단속과 부정적인 여론 때문에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기는 부담스럽지만, 어떻게든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카드가 지난 주 상담직원을 채용한 데 이어서 25일까지 계약직으로 심사상담 직원 20여명을 충원하고 나선 것도 비슷한 맥락. 삼성카드 측은 "기존 직원들의 계약이 만료돼 직원을 충원하는 것일 뿐"이라고 했지만, 업계에서는 "사태가 진정되면 본격 영업에 나서기 위한 발판 아니겠느냐"는 반응이다.
체크카드 시장 판도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3개월간 국민은행이나 농협은행에서 체크카드를 발급 받으려면 기존 국민카드나 농협카드가 아닌 신한, 삼성, 현대, 하나SK 등 다른 제휴 카드사에서 발급받아야 한다. 체크카드 고객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삼성이나 현대카드가 체크카드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지난해 9월 기준 체크카드 점유율은 농협이 23.5%로 가장 높고, KB국민 (21.11%), 신한(16.92%) 순이다. 삼성과 현대는 각각 1.49%, 0.37%에 불과하다. 업계 관계자는 "당분간은 카드사들이 바싹 엎드려 있겠지만 고객들의 불안심리가 가라앉으면 카드사간의 고객유치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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