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사건이 터졌을 때 "서울시에까지 간첩이…"라는 두려움에 놀랐고, 법원이 지난해 8월 1심 재판에서 검찰과 국정원의 물증을 배척하고 무죄판결을 내렸을 때 다시 놀랐고, 며칠 전 검찰이 항소심 재판에 제출한 중국 당국의 공문서가 위조된 것으로 드러났을 때는 더 놀랐다. 관련 자료를 뒤적이다가 다시 한 번 놀랐다. 이 사건을 다룬 KBS '추적 60분'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가 제재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 도대체 왜 '추적 60분'은 '경고'라는 중징계를 받았을까.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1심 재판 이후인 지난해 9월 방송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무죄판결의 전말'을 인터넷으로 다시 봤다. 주관적일 수 있지만, 이 프로를 보고 강희중PD 등 제작진이 진실에 접근하려고 무척 열심히 취재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검찰과 국정원이 제시한 물증들을 중국 현지 취재와 인터뷰, 많은 자료 비교를 통해 진위를 가려낸 것은 탐사보도의 전형으로 평가할 만했다.
■ "그냥 죽어버리자. 너무 힘들다"는 피의자 유우성씨의 울먹임으로 시작하는 서두만 감상적일 뿐, 나머지 60분은 '팩트'에 충실했다. 유씨 혐의는 2011년 초 북한 회령에 사는 여동생이 중국 연길 친척집에 왔을 때 중국의 QQ메신저를 통해 탈북자 명단을 전했고 여동생은 근처 상점에서 산 USB에 이를 담아 북한 당국에 넘겼다는 것. 취재팀은 해당 상점이 USB를 취급한 적조차 없고, 여동생의 메신저 가입이 몇 달 후인 11월이라는 점도 밝혀냈다.
■ 이외에도 국정원이 유씨가 북한에서 찍었다고 주장한 사진이 중국 옌볜에서 찍은 것이고, 통화기록의 GPS 위치추적을 통해 유씨가 북한에 넘어갔다는 2011년 1월 23일 중국에 있었다는 사실 등으로 주요 물증들의 허구성을 드러냈다. 그러나 방통심의위는 지난해 11월 "재판 중인 사건에 영향을 주는 방송을 해서는 안 된다"는 심의규정 11조를 들어 징계를 내렸다. 언론의 사명과 역할도 모르고, 법원의 판단력마저 무시한 희한한 징계가 아닐 수 없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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