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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2월 18일] 익숙하지 않던 익숙한 것들

입력
2014.02.1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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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이 엄두도 내지 못하는 한계를 뛰어넘은 이들을 우리는 영웅이라 부른다. 이들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스포츠영웅일 것이다. 국가대표로 출전한 선수가 올림픽이라 부르는 잔치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만큼 모두를 흥분시키는 짜릿한 순간이 흔치 않으니. 그와 그녀가 매체의 주목을 받기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 이색적인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것을 보면 그 순간 누가 무엇을 극복했건 금단의 열매를 맛본 자만이 알 수 있는 분명 다른 세상을 보았으리라.

안드레이 부킨과 나탈리아 베스티미아노바 그리고 카타리나 비트. 한때 세계 정상에 섰던 피겨스케이트 영웅들이다. 발음도 쉽지 않은 이 이름들을 숭배하던 때가 있었다. 선수권이면 어떻고 올림픽이면 어떠랴. 순위도 중요하지 않았다. 인간이 낼 수 있는 속도와 중력을 보란 듯이 거슬러 빙판 위를 날아다니며 바바파파(몸이 자유자재로 변하는 생물. 애니메이션캐릭터로 유명)처럼 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는데 그건 분명 신의 장난감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보여주는 인간의 장난감은 매우 고마운 물건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경기를 하지 않는 한 영웅을 보기 위해 그가 있는 곳까지 달려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엄청난 중계료를 내고 각 방송사는 기왕이면 익숙한 캐스터와 분야별 전문가를 데리고 현장에 가 우리 선수가 출전하는 메달 레이스와 인기종목을 골라 보여준다. 허나 무엇인가를 동경하며 열 올리는 것도 한때. 철 지난 옷을 갈아입듯 중계방송을 찾아보던 것도 그만두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고가 나왔다. 불가능할 것 같아 포기했던 벽을 가뿐히 넘어 전세계인을 가슴 뛰게 하는 요정이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아이부터 노인까지 국민들 모두 전문가가 되어 품평을 해대기 시작했다. 스파이럴, 에지, 스핀…. 낯설던 이 단어들이 어느새 입에 착착 붙어 무리 없이 대화에 껴든다. 그런데 이순간 고마웠던 장난감이 실은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머리꼭대기에 앉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메달을 따기 위해 마치 내가 온갖 역경을 함께한 것처럼 사람들을 집단 착각으로 유도하는 캐스터의 수선스러움에 기술의 성공과 실패만 주구장창 늘어놓는 단조로운 해설을 보태니 많이 불편하다.

"점프, 트리플 악셀… 성공했어요. 자, 국민 여러분 금메달입니다." 질리도록 듣는 이 고함소리, 익숙하지 않나?

"굉장한 점프죠.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녀가 빙판 위에서 너무나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전례 없는 우아함과 불꽃을 지닌 은총 받은 예술가입니다." 번역을 해야 들리는 이 고급스런 해설, 참 낯설다.

한 방송 관계자는 "매체환경이 엄청나게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라디오에서 시작한 해설방식에서 한발도 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방송에 섭외되어 남들 앞에 나서니 전문성을 자랑해 주목 받고 싶은 이의 욕심도 시계를 멈추는데 한 몫 했을지 모르겠다.

영웅이 된 자의 숨은 노력과 가치는 어차피 나와 상관 없으니 누군가 판 벌린 이벤트, 흥분하기 딱 좋게 재단해놓은 규정에 꿰어 맞춘 스타를 4년 주기로 소비하다 버리면 그만인 매체. 그러나 효용가치가 없어 버리는 것은 비단 매체만의 속성은 아닐터. 매체의 천박한 소비를 탓하기에 앞서 그보다 조금도 낫지 않은 우리의 얇은 귀와 가벼운 혀에 존중 받아 마땅한 가치도 상처입고 버려지지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몇 년 전에 만난 무용수는 망가지는 제 몸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대회에서 만난 외국 친구들이 한국 비보이들은 좋아서 추는 춤을 즐기지 않고 이기는 데만 목숨을 건대요. 하지만 우리는 관절이 망가지더라도 이겨야 해요. 그래와 봐주니까."

그녀가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왔기에 기꺼이 박수치고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하지만 '모' 아니면 도'뿐만 아니라 '윷', '걸', '개'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금메달을 따서가 아니라 그가 도전하고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영웅이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다.

김신아 아트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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