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소치의 피시티 올림픽 스타디움의 개막식 '러시아의 꿈'은 러시아의 시대적 흐름을 흡인력 있는 스토리와 예술적 표현력으로 선보인 무대였다. 눈꽃 5개가 오륜기로 피어나는 연출 가운데 기계적인 실수로, 아메리카 대륙을 상징하는 원 하나가 펼쳐지지 않자, 오륜기가 아니라 사륜기라며 옥에 티라는 지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올림픽의 진정한 꽃은 펼쳐지지 않았던 눈꽃이 아니라, 각국의 선수들 즉 사람이 피워내는 '인(人)꽃'이었다.
특히 선수들이 입은 유니폼과 국기는 꽃의 실체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을 배가시키는 상징적인 기호였다. 선수입장이 시작될 때 스타디움의 바닥은 커다란 스크린이 되어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사진을 띄웠다. 지구를 클로즈업한 화면에서 입장할 나라의 형상을 화면에 표시하면, 선수단은 깃발을 들고 아름다운 미소로 걸어 나왔다. 국기는 나라를 상징했다.
개막식의 선수 입장에서 선수 겸 임원 1인으로 참여한 베네수엘라의 알파인 스키 선수는 국기를 흔들며 신나게 춤을 춰서 화끈한 인기를 얻었다. 그의 손에 들린 베네수엘라의 국기는 노랑, 파랑, 빨강으로 이루어진 3색 기에 문장과 8개의 별이 그려져 있다. 풍요와 태양을 상징하는 노랑, 하늘과 바다의 파랑, 독립을 위해 흘렸던 피를 의미하는 빨강이다.
베네수엘라도 눈이 내리지 않는 곳이지만, 자메이카도 겨울이 없는 나라이다. 봅슬레이 경기 자체가 불가능한 곳에서 기적을 만든 영화 '쿨 러닝'의 힘이었을까. 개막 이틀 전 장비를 잃어버렸다가 천신만고 끝에 되찾은 사연 때문이었을까. 큰 환영을 받은 자메이카의 국기는 노랑, 검정, 초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노랑은 자원과 빛나는 태양, 검정은 역량과 창조, 초록은 농업과 희망을 의미한다.
과거 옛 소련에 소속되어 있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선수들도 큰 박수를 받았다. 이들 나라의 국기는 과거 소련의 상징이었던 낫과 망치, 별모양의 문양이 빠져있는 형태이다. 카자흐스탄 국기는 하늘색을 기본 바탕으로 민족의 조화를 상징했다. 벨라루스 국기의 빨강은 영광스런 역사를, 초록은 삼림과 대지, 미래의 희망을, 하양은 전통의상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의 경우도 구소련의 국기 형태에서 벗어나 본래 우크라이나의 색을 찾아 2색 기를 만들었다. 파랑은 하늘과 산과 물결을, 노랑은 금빛 대지를 상징한다.
러시아의 국기는 위로부터 하양, 파랑, 빨강으로 이루어진 3색 기이다. 하양은 진실 자유 독립을, 파랑은 정직 순수 충성을, 빨강은 용기 사랑 희생을 의미한다. 흥미로운 것은 네덜란드의 국기는 위로부터 빨강 하양 파랑으로 순서만 다른 같은 3색 기이다. 여기서 빨강은 용기를 하양은 신앙을 파랑은 충성심을 의미한다. 또 이 파랑 하양 빨강을 세로로 3색 배색을 하면 프랑스 국기가 된다. 이때 파랑은 자유, 하양은 평등, 빨강은 박애를 상징한다.
사실 국기의 색은 다양하고 화려해 보이지만, 검정, 하양, 빨강, 노랑, 주황, 파랑, 초록 7가지 색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셈이다. 각 나라마다 국기의 색은 비슷하지만, 그 의미는 사회 문화역사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사용된다. 왜 국기의 색이 이 기본색들에서 시작되었는지 설명하긴 어렵지만, 색이름이 발달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짐작할 수 있다.
즉 태초에 낮과 밤의 구분이 필요했듯이 검정과 하양, 그다음은 탄생 사냥 죽음과 같이 삶에서 보는 빨강, 다음은 빛을 의미하는 노랑이나 자연의 초록, 그리고 바다 가까이서 보게 되는 파랑의 순서로 변화하며 색이름이 발달하여 온 것이다. 그리고 각 국가는 원시인류로부터 중시해왔던 이 기본색에 각 나라의 독자성을 담는 의미를 부여하고 색으로써 국가의 정체성과 문화를 보여준다.
사실 기대했던 것보다 우리 선수들의 올림픽 결과는 좋지 않다. 국민적 관심도 떨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올림픽을 관전하면서 금메달에만 초점을 두진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정으로 스포츠를 즐기는 것은 승부를 떠나서다. 올림픽 국기를 통해 국가를 이해해보듯이 보다 다양하고 넓게 스포츠 문화를 보는 따듯한 시선이 필요하다.
안진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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