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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6.5°/2월 18일] 이직, 파업마저 금지된 직업의 비애

입력
2014.02.1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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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 내 순위는 3등이었다. 경쟁자가 오직 1명인 시합에서 받은 신묘한 성적표다. 경합의 전모는 이렇다. "누가 가장 좋아."(나) "1위 엄마, 2위 베개, 3위 아빠."(7세 아들) "베개는 사람 아닌데."(나) 녀석이 보란 듯 꼭 끌어안은 베개 냄새를 킁킁 맡았다.

억울했다. 이름마냥 사주기 무섭게 새로운 놈이 또 등장하는 또봇을 알파벳순서도 모자라 합체로봇까지 족족 사줬고, 산타클로스(실은 나)에게 특별 부탁해 녀석이 콕 집은 레고시티로 방을 채워줬고, 만화 시청시간을 엄마보다 2배 많이 할당한 착한 아빠 아닌가.

그나마 대기업에 다니는 아들 친구 아빠의 성적을 듣고 안도했다. 아들 친구는 엄마 다음으로 "똥이 좋다"고 내게 단언했다. '똥보다 못한'(?) 아들 친구 아빠는 막상 만나보니 자기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미래에 대한 포부가 넘치는 멋진 남자였다. 희한한 놈들에게 2위 자리를 뺏긴 우리들은 이 시대 아버지들의 위태로운 처지와 상실의 비애에 젖어 통음했다.

2012년 10월 어느 날,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무거운 고민에 빠졌다. 폐암에 폐렴이 겹쳐 자가호흡으로 하루를 넘기기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망설였다. 아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밭은 숨을 쉬며 "못 해줘서 미안하다"는 말을 질리도록 반복하는데도 그저 "아니다" "괜찮다"고만 했다.

"이제 쉬고 싶다"는 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에 맞춰, 모르핀이 당신의 몸 속으로 스며들어가는 순간에야 말라붙은 용기를 쥐어짰다. 아버지를 엉거주춤 껴안고 말을 토해냈다. "사랑했어요, 사랑해요." "그래 나도." 숨이 멎은 아버지의 눈가에 눈물 방울이 맺혔다. 아비는 평생 일만 하다 죽었다. 그게 아비의 자식 사랑이었다.

작년 이맘때 아내는 남편이 해외출장을 간 사이 몰래 아버지학교에 등록했다. 환불 불가라는 설명에 본능적으로 돈이 아까웠고, 아들의 박한 평가와 아버지의 속절없는 임종이 이성적으로 떠밀었다. 그렇게 5주간 토요일마다 제 아버지와 자식을 떠올리며 호읍(號泣)하는 수많은 아비를 목도하며, '휴가도 파업도 이직도 퇴직도 금지된' 아버지(물론 이 땅의 엄마들이 겪는 고통은 더하리라)라는 직업에 대해 배웠다.

졸업장을 받았지만 온전한 아버지라고 감히 자부하지 못한다. 다만 우유 한 컵을 거실에 쏟은 아이에게 버럭 소리지르는 대신 학교에서 배운 대로 "다치진 않았느냐"고 묻고 걸레질을 하자, 녀석이 "아빠 사랑해요" 하면서 안아준 날을 잊지 못한다. 그런 작은 변화들이 쌓이고 쌓여 이제 공동 1위를 유지하거나 가끔 단독 선두에 오르기도 한다.

올 들어 대부분 평일을 타지에 머물면서 부자지간에 틈이 생기고 있다. "나쁜 사장(전 사주)이 감옥에 갔는데 왜 아빠가 집에 못 오느냐, 섭섭하다"는 것이다. 절박한 심정으로 정부가 얼마 전 내놓은 육아대책(일하는 여성의 경력유지 지원)을 찬찬히 살폈다.

돈을 좀더 챙겨줄 테니 알아서 많이들 쓰라는 아빠육아휴직은 의무화가 아닌 이상 물정 모르는(득달같은 경제단체들의 반박을 보라) '희망고문'이나 다름없고, 시간제 돌봄 서비스 역시 새벽근무를 하는 아내에겐 무용지물이다. 1년간 수소문했지만 근처 공립에선 도무지 찾을 수 없던 초등돌봄교실은 그저 더 늘린다는 정도다.

서울에 있을 땐 내가 아들의 등원을 책임졌건만, 이제 청소 노동을 하는 장모가 새벽 일찍 미리 일을 하고 잠깐 돌아와 아이를 챙긴 뒤 다시 일터로 돌아간다. 학교는 방과후 학원비와 인건비, 아이의 복잡한 동선(학교→학원→학원→집) 등을 따져 공부보다 돌봄교실이 잘 마련된 사립을 택했다. 비용이 얼추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수업료 통지서를 받고 대략 난감하다. 일흔 언저리 늙은 부모의 노동에 기생하고, 형편을 넘어서는 금전을 투입해야 아비 노릇을 겨우 유지할 수 있는 셈이다.

정확히 580년 전(세종 16년) 아빠육아휴직을 명했던 왕의 이름을 딴 도시에서, 이번 대책이 여러 한계에 막혀 속상하다는 중학생 딸을 둔 담당 여성 서기관의 울분에 맞장구 치며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그래도 아비는 아들의 입학이 두렵다.

고찬유 경제부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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