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세청의 역외탈세 추징세액이 1조원을 넘어섰다. 역대 최고치다. 국세청은 "역외탈세 차단에 세정역량을 집중한 결과"라고 자평한다. 하지만 적발된 것은 여전히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세금망을 피해 해외로 돈을 빼돌리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세청은 지난해 역외탈세 혐의자 211명을 조사해 총 1조789억원의 세금을 추징하면서 역대 최고 성과를 올렸다고 17일 밝혔다.
국세청이 역외탈세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2009년에는 추징세액이 1,801억원에 불과했지만 이듬해 5,019억원, 2011년 9,637억원으로 매년 급증했다. 2012년 다소 주춤(8,258억원)했던 실적은 지난해 다시 늘어났다.
이날 국세청이 조사 사례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역외탈세는 선박관리 등의 서비스업에서부터 도매업과 제조업 등에 걸쳐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선박관리업체 사주 A씨는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고 이 회사 명의로 선박을 소유하면서 국내외 해운회사 등에 선박을 임대했다. 당연히 선박임대료는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받아 관리했고, 세금은 내지 않았다. 국세청은 A씨에게 소득세 수백억원을 추징했다.
도매업체 사주인 B씨 역시 조세회피처에 임직원 명의로 페이퍼컴퍼니 2곳을 세웠다. 회사의 거래는 페이퍼컴퍼니의 거래로 둔갑했고, 마치 이 회사가 국내에 투자하는 것처럼 위장해 돈을 들여오다 국세청에 적발됐다.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C씨는 국외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국내 주식을 사들여 시세차익을 거두고 다시 이 자금을 해외로 빼돌려오다 국세청으로부터 수천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국세청은 지난해 역대 최대의 추징실적을 올릴 수 있었던 배경으로 ▦해외 세정당국과의 국제 공조 강화 ▦관세청 및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등과의 정보 공유 ▦다양한 정보 채널을 통한 고급 역외탈세 정보 수집 등을 꼽는다. 실제 국세청은 지난해 미국 영국 호주가 공동조사를 통해 수집한 조세회피처 페이퍼컴퍼니 관련 400기가 바이트 분량의 원본 자료를 확보했고, 이를 통해 61명, 1,351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기존 1억원이었던 탈세제보 포상금이 지난해 10억원으로, 올해 20억원까지 상향 조정된 것도 이번 성과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지난해 5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명단을 공개하면서 역외탈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게 높아진 것을 감안하면 흡족할 만한 수준은 못 된다. 영국 시민단체인 조세정의네트워크(TJN)에 따르면 2012년7월 기준으로 한국 기업이 해외 조세피난처로 이전한 자산은 7,790억달러, 우리 돈으로 870조원에 달한다. 중국(1조1,890억달러) 러시아(7,980억달러)에 이어 세계 3위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국세청에 적발된 것은 매우 미미한 수준이라는 얘기다. 이광재 역외탈세담당관은 "솔직히 실제 역외탈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누가 알 수 있겠느냐"며 "최대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인원 부족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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