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수원지법 110호 법정. 형사12부 김정운 부장판사가 "이석기 피고인에게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한다"는 주문을 읽은 순간,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은 미간을 찡그린 채 굳은 표정으로 정면만 바라봤다. 재판을 앞두고 법정에 들어서며 환한 웃음과 함께 방청석의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던 모습과는 사뭇 대조됐다.
재판부가 2시간 가량 판결문을 낭독하며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대부분 유죄를 인정하고 피고인 한 명 한 명의 형량을 선고하자 이 의원의 표정은 굳어져갔다. 이 의원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한동근 전 통진당 수원시위원장은 재판부의 결정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천장만 올려다 봤다. 이날 통진당 대표가 아닌 변호인 자격으로 법정에 출석한 이정희 대표는 재판부의 결정에 끝내 고개를 떨궜다.
법정을 가득 메운 방청객도 재판장의 선고와 함께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판결문 낭독 도중 방청석 곳곳에서 터져 나오던 이 의원 지지자들과 가족들의 울음은 선고가 모두 끝나자 고성으로 바뀌었다. "이석기는 무죄다" "정치 판사는 부끄러워하라" "국정원이 날조한 사건에 검찰과 법원이 함께 놀아나고 있다" 등의 외침이 여기저기서 이어졌다.
법정에 대기 중이던 경찰과 법정 경위 30여명의 제지에도 이들의 목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급기야 이 의원의 억울함을 주장하던 누나 이경주씨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도 했다. 일부 지지자들은 이 의원 등의 손을 잡기 위해 피고인석으로 향하다 이를 막는 법원 직원들과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다.
이 의원은 선고가 마무리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애써 웃음을 보였지만 이내 교도관들에 이끌려 법정을 나섰다. 이 의원 지지자들은 법정을 나서면서도 "국정원 조작 사건, 이석기는 무죄"를 외치기도 했다.
이날 선고 공판에선 오후 2시 재판 시작 30여분 전부터 모든 방청석이 빼곡히 찼다. 변호인단은 김칠준 변호사를 비롯한 17명의 변호사가 모두 출석해 재판을 지켜봤고 검찰측은 최태원 수원지검 공안부장을 제외한 검사 6명이 법정에 나왔다. 공판 방청권은 사전 추첨으로 배부됐는데, 이 의원 지지자들과 피고인 가족들이 대부분 차지해 법정 안에서 우려됐던 보수단체 회원들과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34년 만의 내란음모 사건 재판은 지난해 9월 26일 기소된 지 145일 만에 숱한 기록을 남긴 채 마무리됐다. 지난해 11월 12일 첫 공판 이후 1주일에 네 차례씩 이어진 공판은 이날 선고 공판을 포함해 총 46차례 열려 공판 횟수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제보자 이모씨를 비롯해 검찰측 88명, 변호인측 23명 등 111명이 법정 증인석에 앉았고,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녹취파일 43개 중 증거로 채택된 32개 파일(50여시간)이 법정에서 모두 재생됐다. 판결문은 웬만한 책 한 권보다 많은 470여쪽에 달했다.
수원=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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