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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떨어지면 미술관이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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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떨어지면 미술관이 깨어난다

입력
2014.02.16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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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한 귀퉁이의 컴컴한 기계실. 평소 관람객들이 들어갈 일이 없는 이곳 어디선가 벌레 울음소리 비슷한 것이 들린다. 이대로 돌아 나갈까, 아니면 더 가까이 가볼까. '찌리릭' 하는 소리가 단순히 기계 마찰음일까, 벌레 아니면 그보다 더 큰 것의 울음소리일까. 결국 호기심을 못 이기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한 발 다가서게 된다.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가 저녁 6시부터 8시까지만 문을 여는 '6-8' 전시를 다음달 29일까지 진행한다. 이 기간 동안 아트선재센터 왼편의 한옥을 비롯해 환풍구, 주차 부스, 기계실, 옥상 등 지금까지 대중에 개방되지 않았던 공간들이 이례적으로 문을 연다. 원래 전시 공간이었던 곳은 반대로 오후 6시에 조명을 끄고 문을 닫는다.

지난해 개관 15주년을 맞은 아트선재센터는 1층의 레스토랑과 카페를 없애는 등 전면 리뉴얼을 하면서 공간의 쓰임새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미술관다운 공간은 무엇일까'. 이번 전시는 이 고민의 곁가지쯤 된다. 시간과 장소에 꽁꽁 묶여 있는 미술관을 한시적이나마 해방시켜 관람객과 작가, 미술관 모두가 미술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취지다.

해가 짧아진 겨울, 오후 6시가 되면 앞마당 주차 부스가 번쩍번쩍 빛을 내며 전시의 시작을 알린다. 1층에 있던 인도 식당의 주차 부스로 쓰던 이곳은 레스토랑 계약이 종료하면서 덩달아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작가 듀오 로와정은 철거 직전의 이곳을 디스코텍으로 변신시켰다. 제목은 '파티타임 잡'. 안에서는 오색찬란한 조명이 신나게 돌아가며 한때 이곳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을 수많은 청춘들을 위해 한바탕 파티를 벌인다.

아트선재센터 왼편의 문으로 들어가면 작은 정원과 함께 한옥이 나타난다. 센터가 설립되기 전부터 있었던 이 한옥은 평소 강연 외에 거의 쓰인 적이 없다. 텅 빈 내부 공간을 리경 작가는 빛과 안개, 소리로 채웠다. 초록색 레이저가 가로지르는 어두운 방 한가운데 서면 우주 공간에 떠 있는 것처럼 시간과 장소에 대한 개념이 서서히 사라진다.

3층 전시장 앞 작은 문을 열면 기계실이 나온다. 윤수희 작가가 설치한 '미확인 벌레'가 사는 곳이다.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소리는 벌레 울음이 아니라 합성한 전자음이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전시의 백미인 옥상에 도착한다. 원래 올라오는 통로가 따로 없어 미술관 직원들도 출입하지 않던 곳으로, 이번 전시를 위해 임시 나무 계단을 설치했다. 옥상에 오르면 종로구의 야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청와대 주변 고도제한으로 인해 무엇 하나 시야를 가로막지 않는, 쉽게 보기 힘든 절경이다. 여기에 권병준∙김근채 작가가 준비한 '서울 비추기'는 색다른 즐거움을 더한다. 헤드폰을 끼고 거기에 연결된 손전등으로 도시를 비추면 그 장소에서 채집해온 소리가 헤드폰을 통해 들린다. 여학생의 수다, 아기 울음소리, 돈 세는 소리…셀 수 없이 많은 일상의 소리를 한 발 물러선 자리에서 엿듣고 있자면 마치 주마등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실내보다는 실외에 설치된 작품이 대다수라 추운 겨울 밤 벌벌 떨지 않으려면 옷을 단단히 여미고 가야 한다. 월요일은 휴관.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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