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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2월 17일] 근시안 정책과 짧은 기억의 악순환

입력
2014.02.1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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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의 정책 가운데 임시방편적이거나 근시안적인 것들이 많다는 평가는 흔히 듣는 지적이다. 당장의 경기 상황에 대처하는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이야 먼 미래를 염두에 둘 여유가 별로 없다. 그러나 시장의 구조를 바꾸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정책들의 경우에도 시야가 그리 길지 않다.

최근 카드사 정보유출 사태 이후 정부가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무수한 대책들도 그 효과와 여파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금융정보가 안전하게 수집ㆍ이용ㆍ관리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설익은 대책들이 난무하여 오히려 시스템을 망가뜨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의 목소리도 높다.

금융이나 경제정책 분야에서만 단기적인 대책이 많은 것도 아니다. 전에 어느 언론 보도에서 읽은 기사의 제목이 '46년간 38번 바뀐 입시제도'였다. 이런 빈도로 정책과 제도가 바뀌는 상황에서 백년지대계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무엇보다 당사자인 학생들과 학부모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경제나 교육 이외의 분야에서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이는데 그럼 그 이유는 뭘까?

많은 이들이 정부 관료들의 근시안적이고 안일한 태도를 질타한다. 나아가 우리 언론이나 국민들이 어떤 문제든 오래 기억하지 못한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으며 이를 소위 '냄비근성'과 연관시키는 이도 있다. 혹자는 대통령 5년 단임제의 폐해를 들먹이기도 한다. 이런 요인들이 모두 중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필자도 동의한다. 그러나 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이 요인들과 정부정책의 단기화 간의 악순환이다.

정부 정책이 조변석개하는 상황에서 합리적인 경제주체는 과거 정책의 변천에 대하여 오래 기억하려 하지 않게 된다. 자주 바뀌는 정책들을 일일이 기억하는 것은 고통 또는 비용이 수반되는 데다 미래의 정책을 예견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경제주체들은 새로 정부정책이 발표되더라도 이를 짧은 기억(short memory) 안에 담아두고 오래지 않아 이를 잊어버리는 방안을 '합리적'으로 선택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경제주체들의 선택은 다시 정책 입안자에게 영향을 준다. 대다수의 경제주체들이 짧게 기억하기를 선택한 상황에서 정책 입안자들이 근시안적이지만 국민들을 단기적으로 크게 만족하게 하는 정책을 만드는 것은 자연스럽다.

멀리 내다보는 정책은 당장에는 입에 쓴 경우가 많은데 왜 오늘 욕을 먹어가면서 나중에 공로를 알아주지도 않을 정책을 추진하겠는가? 따라서 단기적인 효과를 주로 염두에 두고 정책이 추진될 수 있는데 이는 다시 경제주체들, 국민들의 기억을 짧게 만드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사고가 터져서 그 수습대책을 마련하는 경우에 정책의 단기화 현상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 전 국민의 관심이 모아진 상태에서 여러 해에 걸쳐 시스템을 정교하게 구축하자는 것은 한가로운 소리로 치부될 터이다.

물론 누구를 처벌하고 누구의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를 바로 논의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당장 시정이 필요한 조치는 신속하게 취해져야 한다.

그러나 몇 사람의 처벌, 몇 가지 조치의 즉각적인 시행만으로 사고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사고들은 여러 문제점들이 오랜 기간 동안 누적되어 곪아 오다가 종기가 터지는 경우가 많다.

오랜 동안 문제점들이 계속되어 왔다는 것은 그 뿌리가 깊으며 많은 경제주체들이 이 상황에 익숙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단기적인 대책 몇 가지로 쉽게 해결되기를 바라기 어렵다.

올 해 정부의 국정목표로 제시되고 있는 '비정상의 정상화'는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뜻으로 이해되는데 이러한 정부의 인식과 정책 방향 설정에 대해서는 필자도 찬성한다. 그러나 사회의 잘못된 관행이 정부 정책과 유리된 것이 아니며 정부 대책이 단기 성과에 급급해 하는 경우 '비정상적인 정상화' 정책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대학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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