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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이지만 한국인 피 흘러 한이라는 정서 공유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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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이지만 한국인 피 흘러 한이라는 정서 공유할 수 있죠"

입력
2014.02.16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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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웨이서 10여년 활동 '벽을 뚫는 남자' 등 출연… 한국무대로 중심축 옮겨"恨, 이해 못할 부분 있지만 한국인 영혼 보여주기 위해 모든 집중력 쏟아붓는 중""미국 무대서 역할은 제한적… 더 다양한 연기환경에 만족"

2006년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크리스'로 국내 무대에 처음 섰을 때만 해도 지금의 '한국 배우 마이클 리'를 상상한 이들이 많지 않았다. 뉴욕 출신으로 한국인 부모라는 혈통만 빼곤 온전히 미국인인 그가, 그것도 1995년부터 10년 넘게 브로드웨이의 주요 무대를 섭렵하던 유명 미국 배우인 그가 첫 국내 공연 이후 8년이 지난 현재, 지극히 한국적인 뮤지컬 '서편제'에 출연한다는 사실은 공연계의 가장 놀라운 뉴스 중 하나다.

마이클 리(40)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 출연하며 한국 무대로 돌아온 지 2월로 딱 1년이 된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노트르담 드 파리'의 '그랭구와르'로 5개월을 살았고 '벽을 뚫는 남자'의 '듀티율'로 다시 3개월을 보내며 한국 배우로 무게 중심을 천천히 옮겨왔다. 2주 전 '벽을 뚫는 남자'의 서울 공연을 마치고 곧바로 뮤지컬 '서편제'(서울 유니버설아트센터 3월 20일 개막)의 '동호'로 살기 시작한 그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한국인 고유의 정서인 한(恨)을 먼저 이야기했다. 미국인인 그에게 한은 뮤지컬 '서편제' 무대에 서기 위해 반드시 가슴으로 이해해야 하는 힘든 감정이다. "가장 어려운 일이죠. 미국인에겐 단지 '깊은 슬픔' 정도로 느껴질 수 있는 감정이니까요. 미국인으로 40년을 살았지만, 그래도 가족 모두가 한국인인 만큼 한이라는 정서는 공유할 수 있어요. 미국이건, 영국이건 세계 어디서 태어났어도 한국인의 피는 변함이 없으니까요. 한을 이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어요. 노래 없이 말할 때 얹혀져야 하는 느낌, 몸으로 전하는 세밀한 한의 표현, 상대를 바라보는 눈과 시선의 방향으로 연기하는 방법 등 단지 한국인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라 진짜 한국인의 영혼을 보여주기 위해 터득해야 할 것들이 산적해 있어요."

마이클 리가 연기하는 동호는 아버지 '유봉'에 대한 반발, 그가 어머니를 죽였다는 증오와 누이 '송화'에 대한 애틋한 정이 뒤섞인 복잡한 심경을 무대에서 보여준다. 송화만큼은 아니지만 판소리를 부르는 대목도 있다. "캐스팅된 후 아내와 여러 번 영화 '서편제'를 보면서 이 이야기에 담긴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해 얘기했어요. 아버지가 자식의 재능을 살리려 눈을 멀게 만드는 등 한을 심어주는 것은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우리 부부는 아이(마이클 리는 두 아들의 아빠다)를 공부시키겠다고 홀로 다른 나라에 보내는 일도 상상할 수 없으니 유봉의 선택을 받아들이기란 불가능하죠. 하지만 유봉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란 잣대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전작들을 통해 그의 한국어는 많이 가다듬어졌다. 특히 '벽을 뚫는 남자'에선 상당한 양의 대사를 소화할 정도로 마이클 리는 지난 1년여 동안 한국어 공부에 매진했다. 요즘은 '서편제'를 위해 개인 교사까지 둘 정도로 열심이다. 인터뷰 도중 가끔 한국어로 농담할 정도이고 특유의 액센트도 많이 사라졌다. "미국인인지 잘 모르겠다는 팬들의 말에 기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내와 함께 학원도 다니고 가정 교사로부터 발음 교정을 받으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요즘 드라마 '아이리스' '커피프린스' '시크릿 가든'을 챙겨보는 중이죠."

브로드웨이를 떠난 지 1년을 넘기는 그에게 '한국 배우'를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언어와 문화장벽을 감내하면서 굳이 한국의 무대에 계속 오르는 그는 가시밭길을 한참 지나고 있을 수도 있다. "미국 무대는 아무래도 한국계 미국인 배우에게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요. 대체로 '왕과 나' '미스 사이공' 등의 아시안 역할에 얽매이는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한국에선 프랑스 시인이나 예수 그리스도 역할 등 인종과 관계없이 다양한 연기를 할 수 있어서 저에겐 보다 크게 움직이는 무대인 셈이죠. 한국에 머물자는 결정은 아내 덕분에 굳힐 수 있었어요."

마이클 리는 의사인 아버지와 형의 영향으로 스탠퍼드대에서 의학을 공부했지만 20대 초반 의사의 진로를 접고 뮤지컬 무대로 향했다. 한국 배우로 방향을 전환한 것도 그에 못지않은 모험임이 분명하다. "배우뿐 아니라 누구나 도전을 해야 하는 시기가 와요. 스트레칭을 처음 할 때엔 힘들지만 계속 노력하면 한계를 넘고 더 나아가 훌륭한 스포츠 선수가 되는 것처럼, 고통스럽지만 성장하기 위해 부딪혀야 하는 일이 있어요. 안락한 곳에서 콘서트 가수로 살아가는 길도 있겠지만요. 저에게 한국 무대 도전은 스트레칭과 같죠."

그는 21일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열리는 '금난새 페스티벌' 무대에도 선다. 뮤지컬 배우와 클래식 공연의 만남이다. 마이클 리는 국내 공연된 적이 없는 뮤지컬 '체스'의 유명한 넘버?'앤섬(Anthem)' 등을 부른다. '서편제'가 마무리되면 올해 가을 가족과 브로드웨이를 돌아볼 예정인 그는 여전히 미국과 한국 무대에 동등한 가능성을 열어뒀다. 하지만 "정열적인 한국인 덕분에 한국의 뮤지컬 시장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힘줘 말하는 그의 발길은 생각보다 오래 국내 무대에 머물러 있을 듯하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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