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전남 여수에서 유조선이 송유관과 충돌한 데 이어 15일 부산에서 유류공급선과 화물선이 부딪혀 원유가 바다로 유출됐다. 방제작업을 서둘러 기름을 신속하게 제거하면 사고 인근 해역에서 당장 눈에 띄는 큰 생태계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겉으로만 그럴 뿐 해양 생태계는 조용히 속으로 앓는다. 인간의 잘못으로 일어난 사고의 후유증을 인간보다 오래 겪어야 한다. 충남 태안 연안의 해양 생물들이 이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2년 지나서야 회복 징후
2007년 12월 태안에서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한 직후 과학자들은 사고 해역 어패류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냥 아무 물고기나 조개를 들여다 본다고 사고의 정확한 영향을 파악할 순 없다. 따라서 해양 환경 관련 국제기구들이 권고하는 생물종을 대상으로 해당 종의 생태적 특성을 반영한 모니터링 기법으로 분석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고 현장에서 생물 시료를 채취할 때는 영하 100도에 가까운 액체 질소나 드라이아이스 등을 채워 냉동보관이 가능한 용기를 들고 다닌다. 기름 속 화학물질이 어패류의 체내에 들어가 만드는 대사물질과 단백질 등이 변성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어패류가 살아 있을 때 현장에서 해부한 다음 이런 대사물질들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화학처리나 냉동보관 등을 거쳐 실험실로 운반해야 한다.
올해로 7년째 태안 연안을 조사 중인 과학자들은 "기름의 영향이 사고 초기보다 많이 줄고 생태계도 많이 회복됐지만 중장기적 변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름 유출로 해양 환경이 황폐화한 직후엔 갯지렁이처럼 유기물을 먹고 사는 생물이 크게 늘었다. 이런 종(기회종)이 많아졌다는 건 환경이 오염됐다는 증거다. 조사에 참여하고 있는 심원준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책임연구원은 "사고 후 2년 정도 지나자 기회종이 조금씩 줄어들며 회복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제거되지 않은 기름도 소량이지만 여전히 남아 있다. 최근에는 바닷가에 기름이 얼마나 깊숙이 침투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직접 1m 깊이까지 땅을 파기도 했다. 바람이 많이 불거나 파도가 심하게 치면 땅 속의 기름이 다시 흘러나와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다.
독성 대사물질이 문제
바다 어류는 강ㆍ호수 등에 사는 민물 어류보다 기름 유출 사고에 취약하다. 민물 어종은 물을 직접 먹지 않지만 바다 물고기는 해수를 마셔 아가미로 걸러낸 다음 체내로 들여보내기 때문이다. 기름의 화학 성분이 체내에 직접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얘기다.
기름 성분은 대부분 물고기의 간에서 대사(분해)된다. 간에서 해독작용이 이뤄지는 인체와 마찬가지다. 물고기의 간은 기름의 화학물질을 해독하면서 다양한 대사물질을 만든다. 이 대사물질 중 독성을 나타내는 것이 적지 않다. 일부 독성물질은 물고기에 암을 일으킨다는 보고까지 있다. 기름 자체보다 기름이 대사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독성물질이 물고기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KIOST 유류ㆍ유해물질연구단은 기름의 수천 가지 화학물질 중 어류 체내에서 독성을 일으키는 대표 물질인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의 농도를 태안 연안 물고기에서 측정했다. 그 결과 PAH 농도는 사고 직후 어류의 근육과 간에서 매우 높게 나왔다가 3개월 후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다. 어류 체내의 유류 대사물질 함량도 사고 직후 정상보다 100~1,000배 높은 농도를 기록했다가 감소했다. 분석에 참가한 정지현 KIOST 선임연구원은 "대사물질이 증가했다 감소하는 경향이 지금껏 반복되고 있다"며 "여전히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름 오염의 영향은 어류가 유영어종인지 저서종인지에 따라서도 차이를 보인다. 물 속에서 헤엄치며 다니는 유영어종보다, 바닥 가까이에서 생활하는 저서종이 퇴적물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퇴적물은 기름이 해수에서보다 더 오래 남아 농축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환경에 살며 흙 속의 작은 생물을 먹고 사는 저서어류는 기름 유출 사고의 영향을 장기적으로 더 많이 받는다.
국제학계에서 사고 모니터링 대상으로 지정한 유영어종 중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는 대구, 볼락, 농어 등이 있으며 저서종은 가자미와 넙치(광어) 등이 있다. 정 연구원은 "다른 어종에 비해 체내 지방 함유량이 많은 농어가 유류 사고에 특히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기름 성분이 아무래도 지방 조직에 더 잘 섞여 쌓이기 때문이다.
유류처리제에 더 민감
어류는 기름 성분의 체내 대사 속도가 비교적 빠른 편이다. 근육에 축적된 화학물질 농도가 90일 정도 지나자 감소세로 돌아선 게 이 덕분이다. 하지만 대사 시스템이 어류와 전혀 다른 조개류는 기름 오염의 영향을 좀 더 오래 받는다. 산란기 같은 생리 주기에 따라 체내에 쌓이는 기름 성분의 농도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기 때문에 독성물질의 배출 속도가 느리다.
눈에 보이지 않는 플랑크톤도 기름 유출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다. KIOST 이균우 선임연구원 연구팀은 허베이 스피리트호가 유출한 기름과 같은 이란산 원유와 바닷물을 섞은 물질(WAF)을 실험실에서 동물플랑크톤의 일종인 요각류들이 떠있는 물에 뿌렸다. 그 결과 요각류 새끼의 절반 이상이 96시간 이내에 죽는 급성 독성이 나타났다.
그런데 기름 유출 사고 때 방제용으로 바다에 뿌리는 유류처리제(계면활성제의 일종)는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원유와 바닷물, 유류처리제가 함께 섞인 물질(CEWAF)을 요각류가 떠있는 물에 뿌렸더니 새끼와 성체 모두에서 급성 독성이 나타난 것이다. WAF와 CEWAF를 처리했을 때 모두 요각류가 알을 적게 낳거나 새끼의 발달 기간이 느려지는 경향도 확인됐다. 이 연구원은 "독성이 요각류 여러 세대를 거쳐 누적된다는 의미"라며 "실제 생태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요각류를 먹고 사는 어류 등 상위 단계 생물들도 장기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여수와 부산 사고는 태안 사고보다 규모가 작다. 그렇다고 해양 생태계에 미칠 영향마저 미미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과학자들조차 아직은 예측이 어렵다고 말한다. 심 연구원은 "적어도 2, 3년은 지나야 구체적인 영향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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