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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신장 의식 무딘 일본사회

입력
2014.02.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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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임명한 모미이 가쓰토(籾井勝人) NHK회장의 "전쟁 중 위안부는 어느 나라에나 있었다"는 발언 후폭풍이 거세다. 언론과 야당은 모미이 회장의 발언을 망언으로 간주, 사퇴를 촉구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개인적인 생각을 말한 것일 뿐 업무와는 관계없다"며 귀를 막고 있다.

아베 총리가 앞서 NHK 경영위원으로 임명한 우익작가 햐쿠타 나오키(百田尙樹)는 자신의 트위터에 야당을 공격하는 글을 올리면서 "머리가 나빠서 무서운 것은 없지만 예쁘고 젊은 누나에게는 약하다"고 적었다.

모미이 회장의 위안부 발언은 일본군의 강제동원 문제 이전에 일본 사회가 얼마나 여성 문제에 대해 전근대적 인식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햐쿠타 역시 상대방을 비방하는 과정에서 아무렇지 않게 여성 비하적 표현을 쓰고 있다.

일본 정치인의 여성 비하 발언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총리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외국 정상들과 만나 일본의 과거사 인식제고를 촉구한 것을 두고 "여고생의 고자질"에 비유했다. 일본의 제2야당 일본유신회를 이끄는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은 위안부 망언에 이어 오키나와 주둔 미군에게 풍속업을 권장했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이 문제로 인해 국제적인 지탄을 받은 그는 반성은커녕 "한국도 베트남전에서 풍속업을 이용했다"며 물타기에 나섰다가 정치적 역풍을 자초하기도 했다.

최근 치러진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15명의 후보중 단 한명의 여성이 없었다는 사실은 일본 정치권에 여성이 진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다.

여성비하 표현은 정치권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남자 대학교수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 여성 아이돌 그룹의 멤버를 "옛날 같으면 기생에 어울릴 얼굴"이라고 말하자, 다른 출연자가 "내가 봐도 그렇다"고 맞장구 치는 장면이 여과 없이 방송된다. 어떤 퀴즈 방송은 심지어 이혼 경력이 있는 여성 연예인들만 출연시킨 뒤 "당신은 두 번 이혼했는데 왜 나왔느냐"고 핀잔을 주기까지 한다.

한국에도 방송되는 아동용 애니메이션의 극장판에 여자 아이의 치마가 치켜 올라가는 장면이 매번 양념처럼 삽입되고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놀랄 일도 아니다(물론 이 부분은 한국에서는 삭제된 채 상영된다). 이런 문제가 터질 때마다 여성단체에서는 반박 성명문을 내고 있지만 여성 인권과 연관시켜 보도하는 언론은 찾을 수 없다.

아베노믹스로 물오른 아베 총리가 여성의 사회 진출과 능력을 확대시켜 성장을 유도하겠다는 정책을 최근 발표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유엔연설에서 전 세계 여성의 인권 향상을 위해 30억 달러 이상의 공적 원조를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여성 배려에 진정성이 없다는 것은 주변 인사를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아베 총리의 지지로 도쿄도지사로 당선된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는 부녀자 망국론을 펼친 경력이 있고, 아베 총리가 임명한 또 다른 NHK 경영위원 하세가와 미치코(長谷川三千子) 사이타마(埼玉)대 명예교수는 "여자는 집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고, 남자는 아내와 자식을 부양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폈다.

아베 총리의 공허한 여성 인권 외침이 계속되는 한 진정한 여권 신장의 길은 멀어만 보인다. 이런 의도가 위안부 문제로 위기에 몰린 타개책의 일환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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