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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2월 17일] 나씨, 혹은 라씨

입력
2014.02.1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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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이사를 가게 되어 전세 계약을 맺었다. 집 거래를 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상대의 각종 공식 명의를 확인하게 된다. 계약서를 써야 하니 주민등록증을 보게 되고 근저당은 없는지 확인해야 하니 등기부등본을 보게 된다. 또 계좌이체를 해야 하니 통장 명의를 보게 된다. 새로 들어갈 집의 주인 이름은 주민증과 등기부 상에는 '나○○'로 기재되어 있는 반면 계좌 상으로는 '라○○'였다. 부동산 중개인이 양해를 구했다. 사실 양해가 필요할 만큼 의심스러운 건 없었다. 다만 나는 사람의 성씨에 두음법칙은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 건지 궁금해서 원래 쓰는 이름이 뭔지 물어보았다. "그게 글쎄… 좀 짜증스러워요." 주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한숨을 쉬었다. 오래 전에는 '라○○'라는 이름에 익숙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호적 전산화가 시행되면서 서류상 이름이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나○○'로 바뀌어 버렸다나. 어색했지만 귀찮은 일이 많아 체념하고 '나○○'에 적응하는 중이었는데, 어느 날 은행에 가서 새 계좌를 만들려 했더니 예전부터 '라○○'로 거래를 해온 터라 계속 그 이름을 써야 한다고 하더란다. "왜 내 이름 가지고 지들이 이래라저래라 하는지 모르겠어요. 나도 내가 나씨인지 라씨인지 헷갈릴 지경이에요. 이름이 막 그래도 되는 거예요?" 그러게 말이다. 이름이 막 그래서는 안 될 텐데, 무슨 편의가, 무슨 법칙이, 물려받은 성씨마저 헷갈리도록 만든 걸까.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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