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질 하십니까?" 2010년 10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무실. 서은(14ㆍ가명)이가 처음 만난 선생님들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건넨 말이다. 서은이와 함께 온 서울 마포경찰서 보안계 신현익(60) 경위가 당황한 교사들에게 서둘러 해명했다. 북한에서는 '질'이 비하가 아닌 '일'이란 뜻으로, "선생님이십니까"란 말이라고.
신 경위가 아니었으면 서은이는 등교 첫날부터 이상한 아이로 찍힐 뻔했다. 북한에서 태어난 서은이는 2004년 가족과 함께 탈북해 4년 전 중국을 거쳐 한국에 왔다. 당시엔 고기나 우유를 소화시키지 못할 정도로 허약했고 한글도 쓸 줄 몰랐다.
그랬던 서은이가 14일 좋은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했다. "서은이는 책임감이 강하고 공부 욕심이 있어 성적이 상위 20% 안에 들어요. 배려심이 많아 친구들도 많이 따르고요." 담임교사는 서은이를 "100점짜리 학생"이라고 자랑했다.
친구들은 아직도 서은이가 북한 태생이란 걸 모른다. 혹시라도 차별 받을 것을 우려해 학교 측이 비밀에 부쳤기 때문이다. 서은이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했다.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아 5, 6학년 연달아 학급 회장과 부회장을 맡았다. 장래희망은 간호사. 서은이는 "중학교 입학 전까지 열심히 예습하겠다. 커서 남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서은이 가족이 정착하기까지 신 경위의 도움이 컸다. 그는 보안계에서 관할구역에 사는 탈북자를 관리하고 정착을 돕는 일을 하면서 2010년 서은이네를 처음 만났다. 그는 영민하고 성품도 바른 서은이에게 특히 애정이 갔다. 정착 초기 수 개월간 매주 토요일이면 서은이 집에 들러 국어와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신 경위는 이날 '네가 진심으로 자랑스럽고 잘 자라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는 편지와 중학교 교복 값에 보탤 용돈을 졸업 축하 선물로 건넸다. 서은이는 밝은 웃음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매년 어린이날 저를 어린이대공원에 데려가 주신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아빠처럼 저를 대해 주셨어요."
경찰 경력 37년인 신 경위는 오는 6월 정년 퇴임한다. 그는 경찰 생활의 마지막을 서은이 가족을 돕는 데 쓸 수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친손녀 같은 서은이가 바르게 자라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껴요. 앞으로도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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