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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2월 15일] 지중해에 관한 두 권의 책

입력
2014.02.1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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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차례 지중해를 여행한 적이 있다. 지중해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어릴 적 사회과 부도에서 지중해를 처음 발견한 이후부터다. 공부에 별 소질이 없던 나는 자율학습이 지루하면 부록과 도감이 가득한 사회과 부도를 몰래 펴 놓곤 낯선 나라의 도시나 지명들을 공책에 써보며 몽상을 하곤 했다. 이름 모를 도시의 위도나 경도들을 중얼거리는 일은 어떤 공식보다도 즐거운 암호들이었다. 여행은 늘 멀미를 동반하게 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결국, 나는 상상하던 지중해를 벗어나 실제로 3등 칸 페리호의 선상에 자리를 마련하고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만에서 시작해 시슬리를 돌고 그리스의 섬들을 돌아다니게 되었고, 튀니지와 모로코를 둘러싸고 있는 사하라 사막에서 지중해의 하늘을 올려 보며 낙타를 타기도 했다. 지중해는 어느 해안 쪽을 택하거나 어느 도시나 섬을 택하더라도 물색의 변화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상에 젖을 수 있는 곳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방파제에 앉아 구닥다리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옆에 놓아두고 낚시를 하고 있는 한 노인을 보고 있다면 이곳 출신들 작가들의 내면에 닿게 되는 곳이 지중해다. 하지만 당신이 아직 지중해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그 전에 무엇보다 지중해를 예찬한 작가들의 책을 몇 권 추천하고 싶다. 지중해에 관한 탁월한 에세이들 말이다. 그중에서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와 알베르 카뮈의 이라는 책은 오랫동안 지중해 여행 때마다 챙기게 되는 빠지지 않는 책이다. 카잔차키스의 글이 코발트 블루 쪽이라면 카뮈의 글은 울트라 마린 블루에 가까운 색이다. 카잔차키스가 남성적이라면 카뮈는 중성적이다. 카잔차키스의 이야기에는 작가의 사유와 연결된 힘줄이 탱탱하다. 때로 그 장력에 튕겨 나가버릴 것만 같은 호흡을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가의 남성적 문체에 가려진 인간에 대한 회한에서 또 다른 파랑을 발견할 수도 있다. 가령 그는 나일강의 농부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신은 범람과 배수를 주기적으로 반복한다." 이탈리아 이집트 시리아 반도 예루살렘 등을 여행하며 쓴 이 여행기에는 카잔차키스가 인간을 관찰하고 세계를 해석하는 질문과 냉철함이 가득하다.

그는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과 대화에서 냉소적일 때 가장 유머러스한 인간의 위트와 기지를 발견하고 가장 냉소적인 순간에 가장 인간적으로 변모하는 예술가들의 초상 속에서 자신이 쓰고 있는 글의 기상을 발견한다. 여행이란 그에게 늘 열광과 타오르는 불꽃 같은 것이다. 작가 중에 카잔차키스만큼 다양한 여행기를 세상에 내놓은 작가도 드물다. 그가 여행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자신을 늘 낯선 세계에 도착하게 해 두려는 내면의 소용돌이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의 글의 마지막엔 늘 낙타들이 목을 천천히 흔들며 지나간다.

반대로 카뮈의 은 우리가 사는 시대에 사라져가는 순정성을 이야기한다. 알제리 출신의 카뮈는 수많은 글에서 지중해의 열기와 빛과 열매, 풍경들에 대해 이야기 하곤 했다. 그는 스스로 지중해는 자신의 영감과 예감을 만든 원천 같은 것이라고 고백한다. 은 여행기이면서 동시에 카뮈가 지중해를 통해 얻은 명상과 사색이 담긴 성찰들이다. 몽환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이 페이지들의 탐색은 지중해에 가지 못한 사람에게 지중해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비밀이 있는 듯 하다. 이 책에 담긴 여행의 순정은 탁한 물속에서도 일급수에 해당하는 맑은 물기를 찾아 물속을 파고들고 헤치며 떠돌고 있는 아픈 열목어들의 호흡을 표현한다. 하지만 탁한 놈들이나 맑은 놈들이나 한 호흡을 나누어 가지며 살게 되어 있다는 동시대라는 호흡 또한 이 책은 중요하게 시사한다.

가파른 물을 좋아하는 물고기들은 고인 물의 소요와 고요를 맛볼 수 없이 세월을 건너가고, 고인 물에서만 노니는 물고기들은 가파른 물을 만나면 금방 숨이 차올라 육지에 기어오르려고 발버둥을 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여행이라고.

김경주 시인ㆍ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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