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다 보면 관객들은 종종 스스로에게 묻게 될 듯하다. '저 상황에서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고. 많은 자문과 자답을 마치고 극장 문을 나설 때면 사고의 키가 반 뼘 정도는 커진 느낌이 들 듯하다. 한 남자의 질풍노도와 같은 고뇌와 분노를 정적으로 묘사한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은 고전의 풍미를 지닌 수작이다.
16세기 프랑스 시골의 말 상인이 영화를 시종 이끈다. 말을 내다팔기 위해 시장으로 향하던 콜하스(매즈 미켈슨)는 마을의 젊은 남작으로부터 전에 없던 통행료 납부를 강요받는다. 두 필의 말을 일단 맡겨두고 장을 다녀온 콜하스는 솟구치는 분노를 참지 못한다. 정갈한 갈기를 지닌 자신의 말들이 돼지우리에서 생활하고 있고 자신의 하인은 남작 부하들의 사냥개에게 물리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통행료 납부도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 자신의 존엄과 품위가 손상됐다고 느낀 콜하스는 소송을 내려 하나 오히려 위협 섞인 권력의 압박만이 돌아온다. 모든 재산을 팔아 직접 소송장을 내러 떠난 아내는 반송장이 돼 실려온다. 결국 콜하스는 귀족들의 행태에 불만을 품고 있던 주변 농민들과 칼을 든다.
콜하스의 거병엔 날이 갈수록 많은 농민들이 합류한다. 콜하스와 그의 부하들은 왕족과 귀족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떠오르나 콜하스의 목표는 단 하나다. 남작으로부터 자신의 말들을 원래 상태로 되돌려 받고 배상금을 받아내는 것이다. 그는 권력을 눈앞에 두고도 자신의 목적이 이루어지자 미련 없이 농민군을 해체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남작에게 원칙을 요구한 만큼 자신도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원칙을 철저히 따른 콜하스의 선택은 그의 목에 칼이 되어 돌아온다.
미켈슨의 연기만으로도 눈이 황홀하다. 그는 상영시간 122분 동안 거의 무표정으로 일관하는데도 다양한 감정을 온전히 전달해낸다. 얼굴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과 눈빛만으로도 당황스러움과 단호함과 공포 등을 매우 효율적으로 전한다. 피눈물을 흘리는 천하의 악당('007 카지로 로얄')에서 어린 소녀에게 성추행범의 누명을 쓴 유치원 교사('헌트')로 변신했던 그의 극단적 연기 이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그는 '헌트'로 2012년 칸국제영화제 최우수남자배우상을 받았다). 휘몰아치는 바람과 하늘을 떠도는 구름, 윙윙거리는 파리들의 날개소리,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숲 등 자연의 여러 모습을 포착해 등장 인물들의 천변만화하는 감정을 전하는 연출력에 공력이 느껴진다.
독일 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가 실화를 바탕으로 쓴 유명 소설 를 스크린으로 옮겼다. 공간을 독일에서 프랑스로 바꾸었으나 이야기 뼈대는 원작과 큰 차이가 없다. 영화는 중세를 바탕으로 한 여러 고전영화들을 연상케 한다. 영화의 감독인 아르노 데 팔리에르는 "25세 때 처음 이 책을 읽고" 영화화를 생각했을 때 "모델로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의 '아귀레, 신의 분노'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 등을 떠올렸다"고 한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다. 27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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