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하원이 13일 안락사 허용 대상을 성인으로 제한하던 규정을 폐지하는 법안을 표결에 부친다. 찬반 공방은 거세지만 지난해 12월 상원에 이어 법안 통과가 유력시된다. 당사자의 결정과 부모의 수락 등 조건이 달려있긴 하나 미성년자 전반이 안락사 대상에 포함되는 첫 사례여서 생명을 둘러싼 의료윤리 논쟁이 한층 뜨거워질 전망이다.
2002년 제정된 안락사법을 개정한 이번 법안은 18세 이상을 안락사 적용 대상으로 규정한 조항을 삭제한 것이 골자다. 기독민주당과 일부 중도우파 의원들이 반대하고 있지만 통과는 무난할 전망이다. 법안은 두 달 전 상원에서 찬성 71표, 반대 17표, 기권 4표로 승인된 터라 하원에서 가결되면 필립 국왕의 서명을 거쳐 시행된다. 필립 국왕이 미성년 안락사 허용에 대해 입장을 밝힌 적은 없지만 벨기에에서 국왕의 법안 서명은 형식적 절차로 여겨진다.
안락사를 합법화한 세 나라 중 나이 제한을 없앤 것은 벨기에가 처음이다. 네덜란드에선 12세 이상, 룩셈부르크에선 18세 이상 성인이 안락사 허용 대상이다. 파급효과를 의식한 듯 벨기에 의회는 ▦죽음이 임박한 환자로 완화될 가능성이 없는 고통을 겪는 경우 ▦환자가 분별력을 갖고 안락사를 선택한 경우 ▦부모와 의료진이 동의한 경우로 미성년 안락사 요건을 제한했다. 본인 의사 확인 요건을 16~17세 환자에만 의무적으로 적용하고 12~15세 환자는 부모의 동의로도 안락사 시행을 가능케 한 네덜란드와 비교할 때 엄격한 조건이다. 그러나 '임박한 죽음' '환자의 분별력' 등이 뜻하는 바가 애매모호해 자의적인 안락사 집행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벨기에 하원은 법안 표결을 하루 앞둔 12일에도 격론을 벌였다. 소냐 베크 기독민주당 의원은 "현대 의학으로 중증의 아동 환자가 겪는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며 "담배ㆍ주류 구매에도 나이 제한을 두는데 왜 안락사만 법적 보호 장치를 풀려고 하는가"라고 비판했다. 반면 집권 사회당의 카린 랄리오 의원은 "사는 것뿐만 아니라 죽을 때도 모든 사람이 존엄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며 법안을 지지했다.
의료계에서도 이견이 분출했다. 소아과 전문의 160명은 이날 "고통 경감 치료법이 발전한 현실에 비춰볼 때 쓸모 없고 준비도 덜 된 법안"이라며 표결 연기를 요청했다. 지난해 11월 소아과 의사들이 "임상 경험이 말해주는 것은 극심한 고통과 죽음에 직면한 미성년자들이 건강한 성인 못지 않은 성숙함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라며 법안 승인을 촉구하는 서한을 의회에 보낸 것과 대조적이다. 가톨릭은 지난 10일을 '단식과 기도의 날'로 지정해 법안 반대 시위를 벌였다. 75% 안팎에 달하는 미성년자 안락사 찬성 여론에도 벨기에는 상당 기간 법안 통과에 따른 후유증을 앓을 전망이다. 2012년 벨기에의 안락사 시행 건수는 1,432건으로 전년보다 25% 늘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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