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하늘이 원망스러울 뿐 입니다."
강원 강릉시 경포해수욕장 인근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허병관(52)씨는 13일 오전 또 다시 눈이 쏟아지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하늘만 바라봤다. 허씨는 "이틀 밤을 새가며 12일 오후에야 큰길에서 펜션까지 어렵게 진입로를 냈는데 이번 눈으로 모두 허사가 됐다"고 말했다.
삼척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최모(47)씨는 "길바닥에 나 앉을 판"이라며 울먹였다. 지난 6일부터 가게가 사실상 고립돼 손님이 끊긴데다, 계속된 눈으로 수족관 염도가 낮아지면서 활어의 선도(鮮度)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팔지 못한 물고기를 다 버려야 할 상황"이라며 "하늘에 고사라도 지내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6일부터 엿새 동안 1m가 넘는 기록적인 폭설이 쏟아진 강원 동해안에 또 다시 큰 눈이 내려 추가피해가 우려된다.
13일 강원지방기상청에 따르면 12일 밤부터 내린 적설량은 북강릉 39.3㎝를 비롯해 강릉 33.5㎝, 동해 26.5㎝, 삼척 25.0㎝, 강릉 왕산 24.5㎝, 속초 14㎝ 등이다. 최고 15㎝의 눈이 올 것이라던 예보와 달리 2배 이상 많은 눈이 쏟아졌다.
폭설로 강릉 등 5개 시군 시내버스 32개 노선(259㎞)이 여전히 단축 운행되고 있으며, 8개 마을 65가구가 1주일째 고립돼 있다. 비닐하우스와 축사 210개 동이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주저 앉았고, 태백ㆍ영동선 화물열차 운행률도 평소의 53% 수준에 머물러 물류운송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이날 오후 12시 15분쯤에는 강원 동해시 묵호동 주택에서 최모(50)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폭설로 고립된 최씨가 영양실조로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폭설피해 현장은 예산과 장비, 인력 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가 강원도에 특별교부세 3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이는 200억 원 가량으로 추산되는 전체 복구비용의 15%에 불과해 강원도와 폭설지역 8개 시ㆍ군은 추가 지원을 호소했다. 강원도 재난당국은 제설예산 68억원이 동나 현재 예비비와 긴급 재난기금까지 투입하고 있다.
최명희 강릉시장은 "하루빨리 동해안이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특별재난지역 선포 등 정부 차원의 긴급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트랙터와 굴삭기, 덤프트럭 등 중장비도 부족해 도심 외곽지역 대부분은 인력에 의존해 작은 길만 간신히 뚫고 있다. 강릉과 동해, 삼척 등지 주택가 이면도로도 장비를 지원받지 못해 차량 소통이 불가능한 지역이 수십 곳에 이른다. 재난당국은 270여대의 중장비가 더 필요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번 눈은 습기를 잔뜩 머금은 '습설'이어서 현재 지급된 플라스틱 삽과 장비로는 제설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강릉 강동면 임곡리에서 제설작업에 참여한 두관선(38)씨는 "플라스틱 장비로 무거운 눈을 퍼내다 부러지는 경우가 많고 몇 대 안 되는 중장비도 낡아 고장이 잦다"며 "농어촌 지역의 경우 주민 대부분이 고령인 데다, 장비진입이 쉽지 않아 추가인력 배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번 눈은 14일까지 5~10㎝ 가량 더 내릴 전망이다. 강원기상청은 "동풍의 영향으로 눈구름이 만들어져 비교적 많은 양의 눈이 다시 내릴 가능성이 있으니 시설물 관리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강릉=박은성기자 esp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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