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크고 얼굴이 잘 나지 않으면 사람 행세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이러니 머리가 벗겨지면 그 충격을 감당하기 어렵다. 조선 중기의 문인 최립은 '늙음을 탄식하다'라는 시에서 "스님 같아 빗질 할 일 점점 사라지니, 여인네 거울 옆에 서기도 부끄러워라. 어느 듯 반짝반짝 대머리가 되었으니, 곱던 예전 모습은 다시 볼 길 없어라"라고 탄식했다.
그러나 최립처럼 자책만 하면 이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조선 후기의 문인 심낙수는 '나를 사랑하는 집'에서 "나면서부터 다리를 절고 키가 작은 사람은 용모가 아름다운 사람과 나란히 서서 자신을 보게 되면, 제 몸이 못난 것을 싫어하고 남이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신이한 도술을 가지고서 그 용모를 바꾸어 주되 매우 위험한 처지를 당하게 한다면 저들은 반드시 머뭇거리다가 악착같이 줄행랑을 치며 그저 뒤쫓아올까봐 겁을 낼 것이다. 이를 보면 그 사람도 제 몸을 아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라 했다. 누구에게나 외모보다 목숨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심낙수의 말과 달리 요즘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외모를 바꾸려 한다. 이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결점조차 사랑할 때 삶이 편해지는 법이다. 고려 말 김진양이라는 학자는 대머리였기에 자신의 호를 '동두자'(童頭子)라 했다. 누가 물으면 "나는 얼굴에 윤기가 있지만 머리숱이 적지요. 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하지만 술이 있으면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사양하지 않아서, 취하면 모자를 벗어 이마를 드러내지요. 그러면 보는 사람들이 모두 날더러 대머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호를 지었지요. 호라는 것은 나를 부르기 위한 것, 내가 대머리이니 나를 대머리라 부르는 것이 옳지 않겠소? 사람들이 내 모습대로 불러 주니 내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소?" 이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대머리는 빌어먹지 않는다'는 속담을 인용하면서 "어찌 이것이 내가 복을 누릴 징조가 아닌 줄 알겠소? 사람이 늙으면 반드시 머리가 벗겨지는 법, 이것이 장수할 징조가 어찌 아니라 하겠소? 내가 가난하더라도 빌어먹는 지경에 이르지 않고, 또 제 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다면 내가 내 대머리의 덕을 참으로 많이 보는 것이라 하겠소. 부귀와 장수는 누군들 바라지 않겠소만, 하늘이 만물을 낼 때 이빨을 주면 뿔을 주지 않고 날개를 주면 손은 없고 발만 둘 주지요. 사람도 마찬가지라서 부귀와 장수를 겸한 자는 거의 없다오. 부귀를 누렸지만 오래 살지 못한 사람은 나도 많이 보았으니 내가 무엇하러 부귀를 바라겠소. 내 몸을 가릴 초가집이 있고, 내 배를 채울 거친 음식이 있으니, 이렇게 살면서 타고난 수명대로 살면 그뿐이지요. 사람들이 나를 대머리라고 부르고 나도 대머리로 자칭하니, 이것은 내 대머리를 즐겁게 여기기 때문이오". 이렇게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벗 권근은 그를 위하여 '동두설'(童頭說)이라는 글을 지었다. 그 글에서 권근은 얼굴이 검고 몸집이 작아서 사람들이 자신을 작은 까마귀라는 뜻의 소오(小烏)라고 부른다고 하고, 자신도 이 별명을 기꺼이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리고 대머리와 검은 얼굴은 겉으로 드러난 외모요 바꾸지 못하는 것이지만, 그 속에 있는 마음의 덕과 능력은 스스로 어떻게 배양하는가에 그 성취가 달려 있다고 했다.
심낙수처럼 조선의 선비 중에는 도연명의 시에서 '나 또한 내 집을 사랑하노라'라는 구절을 취하여 애오려(愛吾廬)를 집 이름으로 삼는 예가 제법 있었다. 나의 집을 사랑한다는 뜻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집이라는 뜻을 취하였다. 김종후는 벗 홍대용의 집 애오려에 붙인 글에서 "내 귀를 사랑하면 귀가 밝아지고 내 눈을 사랑하면 눈이 밝아진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총(聰)은 귀가 밝은 것이요, 명(明)은 원래 명(眀)으로 눈이 밝은 것을 가리킨다. 자신을 사랑하여 자신의 뜻을 굳게 지키면 귀가 밝고 눈이 밝아지는 총명을 얻는다. 내 벗겨진 머리를 사랑하면 혹 머리가 다시 날지 어찌 알겠는가?
이종묵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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