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금융의 실태은행을 통해 조달하는 자금 外 지하경제부터 신탁상품까지 다양최대GDP 69%, 6350조원 추산… 최근 3년새 두배 늘어 시한폭탄국영은행, 국영기업에만 대출해 줘 중소기업·일반인의 돈줄 역할규제책 내놨지만 경기 둔화 고민중국판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자금 중개 경로 제도권 금융과 얽혀 은행으로 위험 상호전이 쉬워한 번 터지면 부실 도미노 가능성… 지구촌 경제 골칫거리로 떠올라
1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은 중국 한 파생상품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소식을 일제히 전했다. 지린신탁이 그림자금융의 일종인 자산관리상품(WMP)을 중국건설은행을 통해 투자자에게 판매했지만 만기가 돌아온 7일 투자금을 돌려주지 못했다. 지린신탁은 WMP를 팔아 마련한 자금을 석탄회사에 빌려줬는데, 이 회사가 대출금을 못 갚으면서 디폴트가 난 것이다.
앞서 중국 최대 신탁업체 중청신탁이 중국공상은행을 통해 판매한 30억 위안 규모 WMP 역시 디폴트 위기에 처했다. 중청신탁 역시 이 돈으로 광산업체에 투자를 했는데 해당 업체가 부도가 난 것. 금융당국이 원금을 보전해주기로 하면서 가까스로 위기는 모면했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 있는 것일까. 중국 경제의 최대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돼 온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이 심상찮다. WMP의 잇단 디폴트 소식에 국제 금융계는 중국 그림자금융이라는 폭탄이 터지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추산하는 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중국 그림자금융 규모는 2012년 말 현재 최대 36조 위안(JP모건체이스 분석), 우리 돈으로 6,350조원에 달한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69% 수준이다. GDP 대비 규모로 따지자면 미국(153%), 유로존(168%) 등 선진국이나 100%를 웃도는 우리나라보다 낮은 수준. 문제는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는 속도다.
그림자금융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중국에서는 오히려 급증했다. 당시 위기의 주범이었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와 이를 기초로 한 부채담보부증권(CDO)이 그림자금융이었던 만큼 전 세계적으로 규제가 강화됐지만, 중국은 그 흐름에서 비껴있었던 셈이다. LG경제연구원은 "중국 그림자금융 규모가 최근 3년간 2배나 증가했고 심지어 규제가 강화된 지난해 4분기 뒤에도 증가했다"고 밝혔다.
중국 그림자금융이 날로 불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국영은행이 신용과 담보가 확실한 기업에만 돈을 빌려주는 탓이다. 당연히 중소기업이나 일반인은 그림자금융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일부 국영기업은 은행에서 싸게 빌린 돈을 중소기업에 비싸게 빌려주는 편법대출에 나서기도 했다. 장정모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의 그림자금융은 관치금융이나 일부 집단의 부패ㆍ비리의 성격이 크다"며 "일반적으로 분류하는 그림자금융의 성격과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장 말썽은 고액 자산가의 투자상품인 고금리 WMP다. 은행이 WMP를 팔면서 암묵적으로 원금보장을 한 탓에 WMP 부실이 곧 은행의 부실, 금융체계의 부실로 이어질 위험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WMP 대표격인 금융기관연계상품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부른 CDO와 구조가 비슷하다. 은행이 자기 대출채권을 신탁회사에 팔고 신탁회사는 이를 유동화한 WMP상품으로 만들어 은행에 되판다. 은행은 사들인 WMP를 다시 투자자에게 팔고 신탁회사는 투자금을 운용해 투자자에게 연 7% 이상, 최대 15%까지 수익을 준다. 당국의 규제를 받아 금리가 연 3% 수준에 불과한 은행 예금 금리의 2배가 훨씬 넘는다.
WMP의 주요 투자처는 지방정부와 부동산(12%), 인프라 개발사업(23%), 중소기업 등 산업투자(25%). 하지만 중국의 도시화가 늦어지거나 한계기업 파산이 이어지면 WMP 부실을 은행이 메워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림자금융 부실은 중국 실물경제 둔화로 이어지고 최악의 경우 중국판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번질 수 있다. 2012년 말 기준 WMP 잔액은 전체 은행 대출의 12~14%(8조~9조 위안)에 달한다. 금융위기 당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잔액은 미국 전체 은행 대출 잔액의 10% 수준에 불과했다. 파급력이 그 이상일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중국발(發) 그림자금융 폭탄이 터질 가능성은 아직 높지 않다. 당국이 까막눈처럼 사태를 방관했던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와 달리 중국 당국이 문제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은행감독위원회는 지난해 3월말까지 WMP 등 그림자금융 잔액을 보고하라고 모든 은행에 요구했다. 또 그림자금융 투자금액을 WMP 잔액의 35%와 은행의 직전사업연도 총자산의 4% 중 적은 금액으로 제한했다. 중국 당국은 중소기업 자금난 해결을 위해 민간 은행 설립도 촉진하고 있다.
문제는 그림자금융을 옥죄면 중국 경제의 돈줄이 막힌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기름을 부을 수 있다. 중국 정부가 무작정 그림자금융을 억누를 수 없는 이유다. LG경제연구원은 "그림자금융 축소로 자금난이 오면 중국의 고정자산투자가 줄어 중국 구조조정의 촉매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이란 = 은행처럼 자금을 융통하지만 엄격한 규제는 받지 않는 자금중개와 금융상품을 말한다. 이 용어는 2007년 8월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주최 회의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미국 자산운용회사 핌코의 멕큘레리 이사는 글로벌 금융위기 주요 원인으로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Shadow), 은행과 유사한 신용중개 기능(Banking)을 수행하는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림자금융'이 자칫 '지하경제'라는 인식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일각에서는 용어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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