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좀 바뀔 필요가 있다. 대학을 가지 않으면 직업을 선택할 때 제약을 받고, 은근히 무시당하는 시선을 느낀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대학을 위해 유년기와 청소년기 내내 공부하고, 어마어마한 등록금을 쏟아 부어 대학에 다니며, 각종 스펙을 쌓기 위해 분투한다. 그래도 직업을 가지기 쉽지 않으며, 설령 직업을 가져도 고통은 계속된다. 대다수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은 긴 노동시간과 박봉에 고통 받는다. 빚을 짊어진 어깨는 무겁고 노후는 불안하다. 소위 '힐링 멘토'들이 불편했던 건, 이런 체제가 유지되도록 돕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체제를 변혁시키기 위해서는 체제의 문제점을 알리는 노력이 필요할 텐데, 힐링 멘토들은 이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묵인한다. 다만 여행 많이 다니고 열정을 가지며 다양한 경험을 하라는 개인 차원의 노력을 주문한다. 이런 식으로 기업 주최 강연에서 청년을 위로하는 걸 보면 멘토라는 이들의 존재 목적이 기업들이랑 짜고 청년들한테 사기 치는 데 있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어떤 사람들은 강신주를 또 하나의 멘토로 본다. 그가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지 벌써 열흘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그를 두고 여러 얘기가 오가고 있는데, "철학 박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멘토질 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 그의 강연 형태를 보며 "나의 인문학은 이렇지 않아!"라는 비명 지르는 인문학자들, "거리의 인문학자면 중산층이 인문학을 소비하는 현장에 있지 말고 좀 더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공간에 가라"고 훈수 두는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한 마디씩 거들고 있다.
그에 대해 많은 말이 오가고 의견이 갈리지만, 그의 주장 중 핵심인 "자본주의라는 거악에 대항에야 한다"는 주장에는 대개 동의하는 것 같다. 자신의 욕망을 그대로 인정하라,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라, 진짜 자신을 찾으라는 말에도 반박할 구석이 없다. 다만 그의 강연 방식과 논리 전개 방식이 화두다. 주장하는 바를 대중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강하고 도발적으로 말하는 그의 방식은, 중간지점을 설명 안하고 넘어가기도 하고, 결국 무리수나 '어그로'를 낳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를 옹호하고 싶다. 대단히 훌륭한 타자의 타율도 3할 정도다. 글쟁이가 훌륭한 글을 쓸 확률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가 한 말과 쓴 글이 워낙 많으니 그 중 비판 받는 것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게 그라는 '존재'에 대한 비판으로 넘어가는 건 너무 나아간 게 아닌가 싶다. 그가 대중들을 상대로 '지식 장사'를 하고 있다며 비판하는 것도 부당하게 느껴진다. 나는 사기 치는 게 아니라면 지식 장사도 괜찮다는 입장이다. 인문학의 핵심은 고민하는 태도인데 너무 쉽고 즉각적이고 쾌락적으로 인문학의 편린들을 대중에게 떠먹여주는 게 아니냐고 묻는 이들에게는 고민의 싹이 트기위에선 뭐라도 심어야 하지 않냐고 반문하고 싶다. 강신주가 심은 씨앗이 그에게 상담 받은 이들이나 그의 책을 읽은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당장은 모를 일이다. 혼자 책을 찾아 읽는 공부의 시작점이 되거나, 일상 속에서 경험을 쌓아가다 '돈오'의 순간이 오거나, 우려하는 것처럼 일시적 위로만 남긴 채 증발돼버리거나. 어쨌거나 뭐라도 심으면 적어도 가능성은 남는다.
그러니까 강신주에 문제를 느끼는 인문학도들도 보다 적극적인 '지식 팔이'에 나섰으면 좋겠다. 대중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인문학도들이 자신들을 '잉문학도(잉여+ 인문학도)'라고 칭하며 시무룩해한다. 스스로를 잉여라고 느끼는 인문학도들, 불안한 석박사들, 척박한 환경에 놓인 시간강사들…. 이들이 강신주가 도발적으로 말하기 위해 생략한 지점들이 주는 아쉬움과 거친 논리의 불편함을 보완하면서도 지적 자극을 줄 수 있는 '대중적' 인문학자가 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더 많은 이들이 인문학을 통해 성숙해지는 것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방법 중 하나라고 믿는다. 개인적으로는 '인문학 협동조합'에 기대를 걸고 있다.
최서윤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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