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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2월 13일] 팬티와 개인정보

입력
2014.02.1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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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이름'이 단순한 호칭은 아닐 것이다. 명예롭게 인생을 살라는 옛사람의 경구다.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명성을 남기기도 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심할 경우 오명만 남기고 떠나게 된다. 어떤 이름을 남기고 떠날 것인가를 생각하면 삶의 매 순간이 경건해지고 숙연해진다. 고인이 된 애플사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죽음이 변화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라고 했다. 그 역시 빛나는 이름을 남기고 떠난 사람 중 하나다.

우리는 현재 인터넷을 기반으로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간의 정보가 연결되고 서로 소통하는 '커넥팅'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정보들이 생산되고 유통되면서 정보의 바다를 만들고 홍수를 일으키기도 한다. 내 개인정보도 이 물결을 따라 흐르고 있다. 정보 유통의 통로가 확장되면서 개인정보 유출 위험성도 더 커지고 있다. 인터넷과 더불어 생활하면서 우리는 수많은 흔적들을 남긴다. 이러한 흔적들이 개인의 '이름', 즉 명성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통계청이 올 초 발표한 '2014 블루슈머'에서도 인터넷에 개인이 남겨 놓은 예전 흔적들을 지우고 싶어하는 '과거 지우개족'이 첫 번째 블루슈머로 제시된 바 있다. 과거에 만들어 놓은 인터넷 흔적의 영향력은 이제 연예인들이나 고위공직자 등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결혼을 하거나 취업을 할 때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상의 내 개인정보들을 누군가 보고 판단을 하지 않을까 불안해하면서 살아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점에 주목해 인터넷상의 과거 흔적들을 정리하거나 관리해주는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망한 고인의 잊혀질 권리에 주목해 디지털 장례식을 치러주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오규원 시인의 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가벼운 교통사고를 세 번 겪고 난 뒤 나는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 시속 80km만 가까워져도 앞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 입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재빨리 눈동자를 굴립니다." 후반부에서 시인은 쓸데없는 기우에 빠져 있는 자신이 우습다며 자조하지만, 죽고 나서까지도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것이 '이름'을 중요시하는 우리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더러운 팬티는 부끄러움의 대상이지만 잘못된 과거의 인터넷 흔적은 창피함을 넘어 삶 자체를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내가 남긴 개인정보를 모르는 누군가가 수집하고 악용하는 경우다. 재산상의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최근에 일부 카드사의 개인정보 유출사태로 많은 사람이 불안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비자들이 개인정보를 제시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에서 정보유출로 인한 불안감의 확산은 소비 위축과 국민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통계 조사현장을 방문해보면 정보유출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를 종종 듣게 된다. 하지만 조사과정에서 취득한 개인정보는 통계법에 의해 정해진 목적 이외에는 절대로 사용할 수 없도록 철저히 보호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개인정보보호법 이외에 통계법에 의해서도 처벌받게 된다. 통계청이 만들어진 후 수없이 많은 통계조사를 하면서 개인정보를 수집해왔으면서도 지금까지 단 한 건의 정보유출 사고가 없었다. 또한, 개인정보가 담긴 조사 내용은 국세청을 비롯한 어떤 정부부처나 공공기관에도 절대 제공할 수 없도록 법적ㆍ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어 있다.

국가통계 작성과정에서 철저한 개인정보 보호 원칙은 그 어떤 통계적 유용성보다도 앞서는 가치이다. 이에 통계청은 2011년 통계의 날에 국가통계 기본원칙 8가지 중 하나로 비밀보호의 원칙을 포함해 선포하였다.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보면서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공공데이터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국가통계 작성과정에서 정보악용의 대명사인 '빅 브러더'를 늘 경계할 것을 다짐해 본다.

박형수 통계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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