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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2월 13일] 버들강아지

입력
2014.02.1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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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집 주위를 산책하다 버들강아지를 만났다. 전 주인이 잘라버린 갯버들에서 새 가지가 올라와 자란 것이다. 눈이 채 녹지 않은 밭둑에 쭈그리고 앉아 버들강아지를 관찰했다. 볼에 대고 비비기라도 하면 잊힌 기억은 물론 죽은 세포까지 되살아날 것 같았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갯버들 가지를 바라보는데 누군가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공테이프에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해서 질릴 때까지 반복해 듣던 시절이 떠올랐다. 버들강아지를 만지면 솜털 보송한 그녀의 얼굴이 사라질 것 같아 질척거리는 밭둑을 걸어 나오고 말았다.

전축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 김광석의 노래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을 반복해서 들었다. 한 계절쯤 미리 살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의 웃는 모습은 활짝 핀 목련꽃 같아~ 그녀만 바라보면 언제나 따뜻한 봄날이었지~" 그녀가 웃을 때마다 보이던 하얀 덧니가 벌어지기 한참 전 목련꽃 봉오리들로 불어나고 확대되어 흔들렸다.

언젠가 길에서 파는 번데기를 사 먹은 적이 있었다. 온몸에 근질근질 퍼지는 가려움증이 찾아왔다. 손은 둘이고 가려움은 온몸을 순간마다 골고루 긁어 줘도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두드러기는 식도에까지 일어나 어서 긁어 주기를 강요하고 있었다. 그는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두드러기 가려움증은 잠을 자고 나면 문질러 빤 듯이 사라지곤 했다. 그는 잠을 불러와야 살 수 있었다. 그는 살고 싶었다. 잠으로 오르는 지푸라기를 잡고 차창에 머리를 기댔다. 집으로 가는 시내버스는 하염없이 뺑뺑이를 돌았다. 몇 바퀴를 돌아도 차비를 더 받지는 않았다. '덜 덜 덜' 창문을 흔드는 시내버스 엔진의 진동 마력(魔力)에 이끌려 그는 완치된 시간까지 갈 수 있었다. 햇볕에 얼굴이 빨갛게 익을 때까지 그는 쳇바퀴를 돌고 돌아야 했다. 두드러기 자국은 시내버스 엔진 진동에 하나씩 떨어져 햇살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즐겨 듣는 곡은 김광석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이었다. 그 곡을 듣고 있으면 그의 몸에 세 들어 사는 두드러기가 기력을 찾았다. 번데기뿐만이 아니었다. 복숭아나 환타, 과실주를 마셨을 때에도 복병 두드러기가 앞을 가로막았다.

약속 시간을 맞추기 위해 그는 대낮에 친구들과 어울려 술잔을 돌렸다. 그는 레몬소주와 환타를 마셨다. 서울역에서 전철을 타고 가는데 다시 두드러기가 일어났다. 그는 잠의 나락으로 빠지기 위해 사투(死鬪)를 벌였다. 수박 속 같은 1호선 전철의 푹 꺼지는 긴 의자에 앉아 그는 잠을 부르는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을 속으로 부르고 또 불렀다. 그가 깨어났을 때 전철은 명학역을 지나고 있었다. 앞으로 일곱 정거장만 가면 약속장소가 있는 수원역이었다. 조금만 더 눈을 붙이고 있으면 되었다. 그러나 다음에 전철이 정차한 역은 안양역이었다. 그는 깜짝 놀라 안양역에서 내렸다. 그가 타고 온 전철은 수원역까지 갔다가 서울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반대편으로 돌아가 수원행 전철로 갈아탔다. 그는 일곱 정거장을 견디지 못하고 또다시 눈을 붙이고 말았다. 그가 깨어났을 때 전철은 석수역을 지나 시흥역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가 바꿔 탄 전철도 수원역을 거쳐 서울 청량리역으로 가고 있었다. 그가 만나기로 한 그녀는 커피숍에서 두세 시간을 기다리다 쪽지를 남기고 돌아간 뒤였다.

그에게는 계절이 바뀌거나 실내 공기만 바뀌어도 대번에 그 증상이 찾아왔다. 심지어 물만 바꿔 마셔도 그리되곤 했다. 그에게 잠은 그 무엇보다도 훌륭한 명약이었다. 그러나 그의 잠은 엄청난 크기의 드럼통에 담겨 있어 잘 쏟아지지가 않았다.

질척이는 밭둑에 선 갯버들 가지가 흔들렸다.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흐르는 물을 길어 올리는 갯버들의 눈망울이 버들강아지였다. 최선을 다해 잎을 틔우는 베어졌던 갯버들의 운명을 생각했다. 눈을 녹이고 온 바람과 솜털을 맞대 비비는 버들강아지들을 보았다. 그는 그동안 하염없이 맹지((盲地)로 걸어들어온 게 아니었을까.

이윤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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