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에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매일 연습하면서 건반에 밀착되는 느낌, 그게 참 좋네요."
인터뷰 말미에 다다를수록 질문을 곰곰이 되씹는 시간이 길어졌다. 스스로의 성향을 "직감에 의존하고 열정적"이라 평가하는 피아니스트 임동혁(30)씨와의 종전 인터뷰는 즉각적이고 짤막한 직설화법으로 점철됐었다. 하지만 "요즘 제대로 살아왔는지에 대한 생각이 많다"는 설명이 아니더라도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많은 변화가 감지됐다. 뉴욕에 거주 중인 임씨는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리사이틀을 포함한 전국 7개 도시 독주회를 위해 일시 귀국했다. 자신의 대표 레퍼토리인 쇼팽, 프로코피예프, 라벨 등 낭만적이고 화려한 음악 대신 좀처럼 무대에서 선보이지 않았던 드뷔시, 바흐, 베토벤, 슈베르트 등을 꺼내든 도전의 무대다.
10일 기자들과 만난 임씨는 "내 스타일에 맞는 곡을 만족스럽게 연주하는 것보다 예술적 도전이 필요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직업 연주자로서 독주회 레퍼토리로 잘 못하는 곡을 굳이 선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최근 들어 음악적 성취의 욕심이 커졌어요. 브람스의 피아노협주곡 2번을 비롯해 제가 잘 안쳤던 곡 중에 좋은 곡이 너무 많아서 장기적으로 음악적 영역을 넓혀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특히 베토벤 소나타 14번 '월광'에 대해 임씨는 "내가 무대 위에서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껴 보고 싶어 선택한 곡"이라고 설명했다. 안드라스 쉬프 등 절제의 미학을 보여 주는 연주자들을 동경하게 된 게 선택의 큰 이유다. "자신 있게 잘 칠 수 있는 곡"으로 꼽는 슈베르트 소나타 20번 D. 959도 연주 시간이 40분이 넘는 대곡이라 만만한 곡은 아니다. 그밖에 드뷔시의 '달빛'과 바흐의 '토카타, 아다지오와 푸가 BWV 564'를 연주한다.
7세에 피아노를 시작해 1996년 국제 청소년 쇼팽 콩쿠르 2위에 입상하면서 음악계에 이름을 알린 임씨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2003년)와 쇼팽 콩쿠르(2005년), 차이콥스키 콩쿠르(2007년)에서 모두 입상한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은 연주자다. 2002년에는 '피아노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추천으로 EMI에서 데뷔 앨범을 내놓을 정도로 재능을 인정 받았다.
그렇지만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편파 판정을 이유로 수상을 거부하는 등 거침 없는 말과 행동으로 많은 오해에 둘러싸여 있기도 하다. "살면서 많은 걸 느끼고 깨달아요. 제가 또 나이에 비해 큰일을 너무 많이 겪기도 했잖아요. 콩쿠르 수상 거부도 공정하지 못한 심사 과정에 대한 표현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여파가 컸어요. 지금 와서 이런 말 그렇지만 후회의 마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죠."
그는 "심지어 실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이야기해도 '임동혁이라면 그랬을 것 같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서 선입견을 바꾸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됐다"며 "나 자신을 포장할 줄 아는 뻔뻔함이 좀 더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도 저는 제가 하는 음악을 믿어요. 최근 선생님(피아니스트 엠마누엘 엑스)으로부터 지금처럼만 연주한다면 급하게 마음 먹을 필요가 없겠다는 말씀을 들었어요. 그게 힘이 많이 됐어요. 조급해 하지 않고 연주만 생각하려고 합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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