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치킨을 시켜먹기로 했다. 오랜만에 뵈러 간 날이었다. 배달된 치킨과 콜라를 받고 돈을 건넨 후 내가 곧장 들어와 버렸더니, 할머니는 살짝 눈을 흘기고 다시 현관문을 열었다. 밖에는 헬멧과 시커먼 파카로 무장한 배달원이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에구. 얼마나 추울까.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라고밖에 달리 옮기기 힘든 쑥스럽고 애매한 대답이 뒤를 이었다. 엘리베이터는 하필 꼭대기 층을 향해 느릿느릿 올라가고 있었다. 어쩌나. 저놈이 자꾸 올라가네. 할머니는 다시 주섬주섬 말을 보탰다. 배달청년뿐 아니라 배웅을 하는 할머니도 엘리베이터를 함께 기다리는 그 시간이 멋쩍은 게 틀림없었다. 안녕히 계세요, 조심해 잘 가우, 하는 인사가 오가기까지는 1분이 채 안 걸렸겠지만, 체감 상 짧을 수만은 없는 1분이었다. "뭘 그렇게 오래 있으세요, 서로 할 말도 없으면서." 잠시 후 치킨을 뜯으며 내가 지나가듯 한 마디 하자 이런 말이 돌아왔다. "이 추운 날에 집까지 가져다 주는 수고를 하니 얼마나 고맙니." 고마운 건가. 숱하게 음식을 시켜먹고 우편물을 받으면서도 나는 그저 직업이 직업이려니 당연하게 여기기만 했었는데 말이다. 할머니에게 배웅은 그 고마움에 대한 작은 답례의 표시였나 보다. 어색한 공기야 잠시 참으면 될 뿐. 돌아가는 청년이 또박또박 공손한 인사를 건넨 것도 그 마음의 온기가 전해졌기 때문이겠지.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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