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표절이라도 한 듯 내용이 똑같다. 바람 피운 남자들이 뻔뻔스럽게 이혼을 요구하고 다른 여자와 새 출발하려는 것 말이다. SBS 아침 일일극 '나만의 당신'과 MBC 저녁 일일극 '빛나는 로맨스', KBS 저녁 일일극 '천상여자'가 그렇다.
내용은 사실 너무 뻔하다. '나만의 당신'은 3년 간 결혼생활을 했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변호사 남편이 아내 몰래 재벌가 딸과 결혼하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빛나는 로맨스'에서는 피부과 의사인 남편이 채무 변제를 이유로 아내와 위장 이혼을 하고 불륜을 저지른 여자와 결혼식을 올리려 한다. '천상여자'는 더 가관이다. 재벌가 사위로 들어가기 위해 결혼을 약속하고 임신까지 한 여자를 죽음으로 내몬 남자의 욕망이 중심 줄거리다. '나만의 당신'이 1월 20일, '천상여자'가 1월 6일, '빛나는 로맨스'가 지난해 12월 23일 첫 방송을 했지만 막장 논란을 일으킨 이전 드라마에 비해 나아진 구석이 전혀 없다. 이제껏 막장 드라마에서 수없이 우려먹고 반복한 레퍼토리를 답습했다.
결혼을 하고도 미혼남 행세를 하는 남편('나만의 당신'), 다른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아내를 버린 남편('빛나는 로맨스'), 만삭의 피앙세를 길거리에 버린 뒤 그의 죽음을 목격하고도 돌아서 재벌 사위가 된 남자('천상여자') 등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최악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함량 미달 콘텐츠로 시청률 경쟁을 하는 지상파 방송 드라마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언론단체의 한 관계자는 "케이블 tvN '응답하라 1994'처럼 지상파 방송에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드라마가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며 "극단적인 인물과 상황을 담은 질 낮은 콘텐츠로 시청률 잡기에 급급하기 때문에 드라마의 내용이 똑 같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들 드라마 직전에도 여러 드라마가 막장 논란을 일으켰다. MBC는 '빛나는 로맨스' 직전 방송된 '오로라 공주'가 터무니 없는 내용과 설정 때문에 큰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 시청자와 네티즌들은 작가 퇴출 서명 운동까지 했다. '천상여자'의 전작인 '루비반지'는 살인교사, 폭행, 협박, 사기 등을 일삼는 장면들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나만의 당신'의 전작 '두 여자의 방'도 살인, 살인미수, 폭행, 납치 등을 여과 없이 내보냈다. 그러나 이들 드라마는 15~20%를 넘나드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방송사들도 "작품성은 없지만 성공한 드라마"라고 평가한다. 방송사들이 콘텐츠 수준 향상보다 시청률에만 공을 들이는 것이다.
최근 KBS 아침극 '순금의 땅' 기자간담회에서 신현수 PD는 "34년 동안 수신료가 안 올라서 드라마 제작 여건이 나쁘다"며 "월 수신료 2,500원으로는 드라마를 만들 수 없으니 이번에 꼭 올려 좋은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수신료를 올려야만 좋은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는 황당한 발언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순금의 땅'은 7일 25회분까지 연기력이 출중한 아역들로 인해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시청률은 10%를 넘지 못했다. 10일부터 성인 배우들이 등장, 선과 악으로 나뉘어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 갈 것으로 보여 전작들의 행보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상ㆍ하반기에 방송된 '삼생이'와 '은희'는 남자 악역들이 살인, 살인청부, 폭행, 협박 등을 일삼는 장면들로 도마에 올랐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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