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는 우리가 원할 때 항상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용걸 방위사업청장이 최근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보라매 사업)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과정에서 한 얘기다. 매번 해외에서 수입하기보다는 자체 조달 능력을 갖추는 게 전시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유리하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지만 자급자족에도 한계가 있다는 게 문제다. 우선 군 입장에서는 국산 무기가 개발될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성능 좋은 무기를 최대한 빨리 구비하는 게 최선이다. 예산당국도 마찬가지다. 세금을 거둬 무기를 사야 하는 만큼 아무리 안보가 중요해도 무기 개발에 무한정 돈을 쏟아 부을 수 없는 노릇이다.
1970년대 초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주 국방을 기치로 걸고 각종 무기 국산화에 나선지 40년. 대한민국 방위산업은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자주 국방을 뛰어넘어, 해외 수출도 이뤄져 지난해에는 사상 최대인 34억달러(수주 기준)를 수출했다.
그러나 핵심 첨단 무기만 놓고 보면 사정은 다르다. 적기에 비교적 값싸게 무기를 수입하는 대신 국산화를 추구하는 게 과연 전략적으로 옳은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대표적인 게 10년 넘게 표류하다가 올해 겨우 첫 발을 떼게 된 KF-X 사업이다.
타당성 조사만 6차례
9일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무기체계 획득 관련 정부 의결 기구인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이르면 이달 내 KF-X 사업을 위한 '체계개발 기본계획'을 의결한다. 올해 예산에 착수금 200억원이 반영됨에 따라 4월 입찰 공고와 6월 우선협상 대상업체 선정, 11월 본격 개발 착수 등 사업 일정이 확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전투기 개발의 핵심 사항인 '쌍발 엔진'이냐 '단발 엔진'이냐를 놓고 여전히 진통이 거듭되고 있다.
일단 공군은 쌍발 엔진을 요구하고 있다. 엔진 두 개를 다는 게 성능과 안전성 측면에서 더 낫기 때문이다. 반면 정부(방사청)와 개발 업체(한국항공우주산업ㆍKAI)는 비용 대비 효율을 감안, 이런 요구를 들어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KF-X 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한 한국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쌍발 전투기' 개발비를 8조7,000억원으로 예상했다. 단발 엔진인 국산 경공격기(FA-50)를 개조하려는 KAI의 계획(6조5,000억원)보다 2조2,000억원이나 많다. 한 관계자는 "최고 성능을 요구하는 군의 바람은 이해하지만 쌍발 전투기의 경우 30년 간 운용유지비가 단발 전투기의 2.4배에 이르고 가격 경쟁력도 떨어져 해외 수출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3년 정도 미뤄진 전력화 시기도 논란거리다. KF-X 사업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2001년 검토가 시작됐다. 2010년대 중반부터 도태되는 F-4, F-5 등 노후 기종의 공백을 메울 국산 중형 전투기 120대를 개발하는 게 목표였는데, 경제성 논란으로 사업 타당성 관련 외부연구 용역만 여섯 차례 진행하면서 10년을 허비했다. 이에 따라 사업 추진 일정도 지연돼 실전 배치 시기가 당초 2020~2027년에서 2023~2030년으로 3년 정도 늦춰졌다.
이상과 현실 간 괴리
국산화 명분과 전력 강화라는 실리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진 사례는 또 있다. 바로 육군의 국산 차기 전차 K-2(흑표)다. 신형 전차 체계개발 업체인 현대로템은 2008년 차체 개발을 끝내 놓고도 핵심 부품인 파워팩(엔진+변속기) 국산화 때문에 시간을 보냈다. 올 상반기에야 독일제 파워팩을 탑재, 초도 양산분을 군에 납품하게 됐지만 2010년 말 목표였던 전력화 시기는 올 6월로 4년 가까이 미뤄졌다.
전문가들이 흑표 사업을 '과욕이 부른 참사'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92년 소요 결정 당시 연구개발을 담당한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전차 구성 부품 가운데 파워팩은 자체 개발이 어렵다고 판단했지만, 정부가 의욕만 앞세워 2003년 파워팩도 국산화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면서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단 수입 파워팩을 적용해 전력화에 나선 뒤 이를 바탕으로 수출까지 하는 유연한 정책 판단을 했다면 명분과 실리를 다 취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와 관련, 일부에서는 무기보다 기술을 획득하는 방식으로 무기 국산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은 "일본이 핵무장 국가가 아닌데도 마음만 먹으면 핵무기 보유가 가능한 건 기술이 있기 때문"이라며 "지금이라도 무기 획득에만 치중하는 관행을 버리고 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을 독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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