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 민간인 불법사찰 재발방지를 권고했던 국가인권위원회가 단 두 문장으로 된 성의 없는 답변을 받고도, 청와대가 권고를 수용한 것으로 결론 내린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인권단체들은 청와대의 눈치만 보고 있는 인권위를 비난하고 나섰다.
9일 인권위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인권위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에 대해 직권조사를 벌인 후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등에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청와대는 의무회신 기한이 다 된 지난해 5월20일에야 ‘민간인 불법사찰은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음. 다시 이러한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모두 노력해야 할 것임’이라는 답변을 보냈다. 당시 인권단체 등은 ‘성의 없는 책임 회피성 답변’이라며 맹비난했었다.
인권위 전원위원회는 이런 두 문장의 답변만을 받고도 지난해 6월 청와대가 권고를 받아들인 것으로 결론지었다. 인권위의 ‘권고 등에 관한 사후관리지침’에 따르면 권고를 받은 기관이 권고 등의 내용대로 조치했거나 권고 수용 의사와 이행계획을 통지한 경우에만 ‘수용’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피권고기관이 수용 의사를 밝혔더라도 내용이 명확하지 않거나 재협의 등이 필요하면 ‘검토 중’인 사안으로 다뤄야 한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정책과 관행 개선, 인적 청산 등 구체적인 개선계획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청와대가 권고를 수용한 것으로 처리한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라며 “인권이 후퇴한 상황에 대해 개선 독촉 임무가 있는 인권위가 현실을 외면하고 책무를 게을리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인권위 관계자는 “당시 청와대의 회신이 간단하고 형식적이었지만 이행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고 실무기관인 국무총리실과 국회에서 권고를 받아 들였기에 수용 결정을 내렸다”며 “구체적으로 내용을 보완했으면 좋겠다는 점에서 지난해 7월 청와대에 재차 협조 요청을 했지만 아직 답변이 오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잘못된 관행을 바꾸기 위해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후속 조치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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