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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2월 10일] 중2가 사는 지구

입력
2014.02.0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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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을 맞췄어요." 조카가 말했다. 곧 중학교에 들어가는 조카는 디자인이 어떻고 색깔이 어떻고 종알거리다가 손가락으로 치마 길이가 이만큼이라고 알려주었다. 무릎에서 한 뼘쯤 위였다. 그렇게 짧아도 되냐고 물었더니 에이, 하며 대답하길 원래는 더 짧아도 된단다. "하지만 2학년 선배들한테 잘못 걸리면 골치 아프니까 1학년 때는 그 정도로 하래요. 친한 언니가 그러더라고요." 2학년 선배라. 그래.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지. 중2가 무서워 외계인이 지구를 침범하지 못한다고. 돌이켜보면 나의 여중시절도 그랬다. 그날은 내 친구 P의 생일이었다. 넷이 집에 모여 짜장면과 탕수육으로 파티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하필 그날, 2학년 선배들로부터 '소집' 명령이 떨어졌다. P는 뒷산으로 향하며 이렇게 말했다. "먼저 가서 시켜 놔. 금방 끝날 거야."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다. 선배 중 한 명이 P를 좋아했는데, 정기적으로 불러 한참씩 패는 것이 일종의 애정 고백이었다. P가 돌아왔을 때 짜장면은 퉁퉁 불어 있었다. "가슴팍을 맞았더니 면발을 못 넘기겠어. 엄마한테 들키면 안 되는데…" 친구랍시고 우리가 한 일이란 엄마의 눈치가 닿지 않도록 짜장면을 한 입씩 우겨넣은 것뿐. 수줍은 애정은 발길질로 표현하고 든든한 우정은 어른의 시선을 피해 스크럼을 짜는 것으로 이해되던 시절이었다. 그 발길질 때문에, 그 스크럼 때문에, 설마 지구가 지금도 건재한 걸까.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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