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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의 쪽빛보다 푸르게] <22> 극단 가교의 중견 배우 김진태씨와 딸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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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의 쪽빛보다 푸르게] <22> 극단 가교의 중견 배우 김진태씨와 딸 부부

입력
2014.02.0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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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쥬크 박스 뮤지컬의 원조옛 가요를 모티브로 한 악극철저한 라이브를 원칙으로중장년층의 새 문화 만들어● 극단 가교와 함께한 45년1970년에 입단한 김진태씨천막극장 등 다양한 무대로한국적 해학을 푸짐하게 선사● 아버지 뒤를 잇는 딸 부부"선배들의 한마디가 큰 힘"뮤지컬 판에서 만난 인연창작극 등 출연하며 활약

대학로는 나날이 전쟁터를 닮아 간다. 그 중심에서 벗어난 이른바 오프 대학로의 열기도 그에 못지않다. 마로니에 공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풍경처럼 되바라지지는 않지만 그 열기는 중심부보다 가열찰지도 모른다. 주변부라는 와신상담의 정서는 무대에 대한 그들의 열정을 진솔한 것으로 승화시키는 힘이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건너편, 눈에 뜨이지 않는 지하 공간에 연습장을 두고 있는 극단'가교'는 주변부 집단 중에서 한층 특출한 존재다. 내년이면 창단 50주년을 맞는 관록의 집단이다.

김진태(63)씨는 이제 이 극단 대표에서 물러났지만 왕성한 현역 배우다. KBS1 TV의 사극 '정도전'출연을 막 끝낸 그는 요즘 현 대표 박종상(58)씨와 가교의 미래를 구상하느라 여념이 없다. 딸 김윤지(34ㆍ뮤지컬 배우), 사위 김기무(36ㆍ연극ㆍ영화 배우)씨는 그 미래의 일부다. 가끔 여유가 나면 강화도 농가에서 함께 1박2일을 보내고 오지만 머릿속은 언제나 극단 가교다.

박인환 최주봉 윤문식. 이들이 이 극단의 배우라는 것은 몰라도 평균적 한국인들을 쥐락펴락했던 악극 트로이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여기에 김진태 김성녀 등이 추가된다면 언필칭 가장 한국적 연극이라는 화두가 잡히는 것이다. 방송사와 손잡은 극단 가교가 1993년 '번지 없는 주막'을 시작으로 부활시킨 악극이란 장르는 때로 콧대 높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전석 매진 기록까지 세운, 하나의 현상이었다. 당시 가교측의 신청을 접한 예술의전당은"오페라 극장에서는 오페라만 한다"며 난색을 표해 신청 주체를 합작사인 SBS TV로 바꿔 이뤄진 무대였다. '울고 넘는 박달재''눈물 젖은 두만강''비내리는 고모령' 등 잇단 후속타가 만원 사례를 빚으며 전국적 악극 열풍을 예고했다. 네 차례 미국 교포 위문공연도 갔다.

문예회역시 전석 매진 사례를 빚었던 문예회관 공연 때는 소비자 연맹의 고발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좌석도 없는데 표를 남발했다며 분장실에까지 공연 취소를 요구하는 뜬금없는 전화가 걸려와 사과로 유야무야 되긴 했지만. 이후 SBS와의 협업 시스템이 구축돼 홍보와 기획을 방송사가 맡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05년'카츄샤의 노래'이후는 국립극장 악극 시대로 넘어갔다. "옛 가요를 모티브로 한 창작극으로, 쥬크 박스 뮤지컬의 원조 격인 셈이죠."

'해방공간의 여성 국극이나 쇼단에서 맛 뵈기로 보여주던 짤막한 드라마를 따로 끄집어 내고 메인으로 내세워 확대한 새 형식의 무대'. 이 극단의 수장이었던 김진태씨가 정의하는 악극이다. 옛 유행가의 답습만은 아니었다. 오프닝이나 엔딩 대목에서는 필요하면 작곡도 했다.

12인조 악단의 반주를 이용한 철저한 라이브 무대 나름의 원칙이 있었다. 요새 뮤지컬 음악보다 한 수 위다. 나아가 잊혀진 곡들을 끄집어내 살리자는 취지도 한몫 했다. 이를 위해 가요 전집을 뒤져 살려낸 적도 숱했다. "50~60대 중장년층의 문화를 만들자는 거였죠."

나아가 잊고 있던 극장을 재발견하게 된 중장년층 관객들은 이후 뮤지컬도 보러 가게 됐다. 결과적으로 극단 가교가 도도한 오페라극장까지 보통 사람의 눈높이와 맞게 하고 일반화시킨 공이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악극은 극단 가교의 일부다. 기업적 마인드로 똘똘 뭉친 요즘 기획자들은 악극이라는 신상품의 확대 재생산에 골몰했겠지만 김진태씨 등의 선택은 달랐다. 악극 붐 이후 가교는 극작가 이근삼의 '미련한 팔자 대감'을 신호로 해 마당놀이라는 새 장르에 주력하게 된다. 이와 함께 무대를 극장 밖으로 확산시키자는 목표를 세웠다. 나병 퇴치를 위한 전국의 학교 운동장과 논둑방길 공연 등 기동성 있는 일련의 무대가 그래서 만들어졌다. 어찌 보면 미련스럽기까지 한 행보다.

'태양의서커스'라는 존재가 알려지기도 전, 이들은 최초의 천막극장을 제작했다. 1970년대 말 3년 정도로 김진태씨는 기억한다. 냉방시설이 일반화하지 못했던 그 무렵, 여름은 공연 비수기였다. 바로 그 시간, 극단 가교는 새로운 무대와 관객을 찾아 나섰다. 대천ㆍ경포대 해수욕장이나 도봉산 산장 등지는 작고 기동성 있는 무대를 위해 훌륭한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공군부대가 운영하던 배움터였던 풍호학원 돕기 공연 등 사회적 의미의 무대가 그래서 펼쳐졌다. 후원도 없는, 자체 제작 형식의 소박한 무대였으나 김씨는 해설자 등의 역으로 기꺼이 나섰다.

그가 이 극단에 들어 온 것은 창단 5년 뒤인 1970년이었다. 중앙대, 동뭅?출신들이 모여 만들었던, 당시로서는 인텔리 연극 집단이었다. 중앙대 연극학과 69학번으로 이 극단과 함께 숨 쉬어 온 김씨는 왕년의 화려한 1진들이 다 물러난 지금, 극단 가교가 초심으로 돌아갈 때라고 믿는다. 극작가 김상렬씨를 비롯해 트로이카들의 절묘한 앙상블이 어우러져 한국적 해학을 푸짐하게 선사했던 가교의 요체를 찾아가자는 것이다.

극단 '실험'이나 '자유' 등 주요 연극 단체가 뒤렌 미트, 막스 프리쉬 등 외국 작품들을 주로 소개하던 그 무렵 가교는 "우리의 것을 가장 대중적 차원에서 무대화"해 냈다. 한국적 해학이 넉넉한 이근삼의 창작곡이 좋은 예다. 극작가 김상렬이 '햄릿'을 서커스 곡마단의 무대 안으로 끌고 와 풀어헤쳤던 것에 비길 만큼, 극단 가교의 미학적 선택에 대한 그의 자부는 단단하다.

이 대목은 연극 작업을 잇고 있는 딸, 사위의 현재와 연결된다. "아버지의 존재가 결정적이었다." 딸의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아버지의 공연 때마다 무대 뒤로 찾아가 놀았다. 극장은 곧 집이나 다름없었다.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된 세종문화회관이나 국립극장 같은 곳도 다 그의 놀이터였다. "오래된 나무 냄새, 칠 냄새 등 당시 맡았던 그 극장들의 냄새는 아직도 살아 있죠."

아직도 아버지의 연기를 객관적 입장에서 보지 못한다고 했다. 요즘 무대에서 연기할 때 특유의 찡그리는 표정을 두고 주위에서는 아버지의 연기를 무의식적으로 따라 한다고들 한다. "어려서부터 봐 온 아버지의 강한 표정이 묻어 나오죠. 결국 자기 안의 것이 나와야 하는데, 알게 모르게 흉내 내는 것은 끝내야 할 숙제예요." 아버지의 답이 걸작이다. "그런 게 풀리면 재미 없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면적으로 불필요하다 싶으면 자연히 없어지니까."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불친절한 가르침.

다음은 딸 윤지씨의 답일까. "뮤지컬이 결국 '노래 쇼'라고도 하지만 나는 노래를 최대한 말과 가깝게 하려 한다. 우리 뮤지컬이 어설픈 외국 말의 쇼 같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언어의 리얼리즘을 무시한 선율 때문이다."연출이나 음악 감독과 상의해 가사를 바꾸는 것은 그래서다. 특히 대사가 전부 노래(송 스루ㆍsong through)인 뮤지컬 '레 미제라블'은 라이선스 초연 무대부터 우리 말의 정서나 운율은 물론 극장 구조에까지 맞춘 대사로, 사실상 재창작이었다.

"라이선스 번역극보다 더 힘든 것이 우리나라 시대극이다. 아예 손을 못 대는 고유명사의 경우, 언어의 리얼리즘 측면에서 애를 먹는다." 사위 김기무씨의 맞장구다. 경험 많은 선배들이 툭툭 던져주는 한 마디가 실제로 큰 힘이 된다고 한다. 부부의 호흡이 그럴싸하다. 같은 판에서 만난 지 10년이 지난 동지이니 당연할 법도 하다.

부부는 뮤지컬 '모짜르트'를 계기로 2011년 만났다. 당시 김기무씨는 모차르트 아내의 계부로 사기꾼에다 건달인 토에마르트 역이었다. 원래는 한화이글스 소속 프로야구 선수였던 그는 어려서 영화에 파묻혀 살아 왔다. 아버지가 영화수입 배급사인 경강영화사 사장이라 집에는 비디오가 쌓여 있었다. 급기야 2003년 연기의 길로 본격 나서기 위해 야구를 그만 뒀다.

윤지씨는 스무 살을 갓 넘겼던 1999년 SBS의 뮤지컬'미녀와 야수'(김상렬 작)에 앙상블로 출연하면서 뮤지컬과 만났다. 단국대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이던 2004년 극단 신시와 인연을 맺으며 뮤지컬을 재개했고, '렌트''맘마미아''명성황후''레 미제라블' 등 큰 무대를 두루 경험했다."레 미제라블에서는 판틴을 때리며 여인숙에서 쫓아내는 악덕 주인 역이었는데, 몸싸움 하는 여인은 처음이었으나 능란히 소화했죠."부전여전이다.

현재 뮤지컬 '서편제'를 연습 중이다. (3월20일부터 5월11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공연). 유봉의 첩이자 동호의 어머니로 분한다. 1막서 아이 낳다 죽는, 소리 좋아하고 아이 좋아하는 여인이다. 1막 중 '혼자 있는 자유' 2막 중 아이 낳는 이야기로 짠 '부양가' 등의 아리아를 부른다. '정글 라이프'에 이은 두 번 째 창작 뮤지컬이다.

극단 가교에 거창한 미학적 화두는 없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들은 연극 행위가 어떻게 하면 한국적일 수 있는지를 비(非)이론적으로 보여 오고 있다. 이를 두고 연극인의 본능이라 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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