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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사기로 본 매출채권 담보대출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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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사기로 본 매출채권 담보대출의 문제점

입력
2014.02.0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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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자회사인 KT ENS 직원 및 납품업체의 3,000억원대 대출사기는 기업들 사이에 널리 사용되는 매출채권 담보대출제도의 치명적 결함을 드러냈다. 금융기관들은 대기업이 대출금을 결제할 것이라는 안이한 태도로 대출의 적합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고, 대기업은 직원의 지극히 단순한 사기행각을 장기간 눈치채지 못하는 등 감시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번 사건에서 나타난 수법을 이용하면 기업들은 매출채권 담보대출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비자금을 손쉽게 조성할 수 있다는 점도 확인됐다.

누이좋고 매부좋은 매출채권 담보대출

매출채권담보대출은 납품업체가 물품을 기업에 외상으로 납품하고 그 채권(혹은 세금계산서 같은 근거자료)을 바탕으로 금융회사로부터 대출을 받는 제도다. 채권의 만기가 돌아오면 금융회사는 구매 기업으로부터 대출금을 상환 받는다. 보통 매출채권대출은 채권 표시액의 90% 정도가 이뤄진다. 100만원짜리 매출채권이라면 90만원을 대출해준다는 것. 만기도 대체로 6개월을 벗어나지 않는 단기다.

물건을 외상으로 납품한 업체는 어음을 받는 것보다 단기에 외상채권을 현금화할 수 있고, 물건을 구매한 기업입장에선 구매비용을 즉각 지불하지 않거나, 비용을 만기까지 운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또 금융회사도 대기업의 담보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돈을 떼일 염려가 줄어든다. 이 같은 이점 때문에 어음거래가 빠르게 매출채권 담보대출로 전환되고 있다. 현재 은행권 매출채권담보대출 규모는 14조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편리함의 대가는 안전성 취약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매출채권 담보대출 제도의 취약성은 마음만 먹으면 수천억원대 사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중간에 특정 대기업 납품업체들이 공동으로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는 복잡한 구조 때문에 가능했다. 만일 어음제도처럼 납품업체와 구매업체 양자간의 거래라면 금융회사가 3,000억원이 넘는 대출을 해줄 수도, 대출사기가 수년간 발각 안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이번 사건에서 허위매출자료를 통한 은행 대출자금이 흘러간 것은 납품업체 6곳이 공동 설립한 SPC로 현재 드러난 것만 8개다. 납품업체는 현재 경찰수사를 받고 있는 KT ENS 김모(51) 부장이 위조한 매출채권을 이들 8개의 SPC에 양도하고 금융회사로부터 3,019억원을 대출받았다. 하나의 SPC에 대출이 집중되지도 않았고 만기가 발생하면 다른 SPC를 통해 대출받는 돌려 막기로 막아 연체도 없었다.

은행을 포함 13개 금융기관은 KT 자회사가 외상을 갚지 않을 것이란 의심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 사이 자금부서에는 근무한 적이 없는 김 부장이 전화통화와 직인만으로 수천억원대 허위매출 서류를 만들어 납품업체가 SPC를 통해 돈을 빼갈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여러 개의 SPC를 통해 매출채권 대출액을 엄청나게 부풀릴 수 있었다는 점은 기업들이 이 방법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할 수도 있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우려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의혹들

KT ENS는 이번 사건이 잇따라 인사고과에서 하위등급을 받아 불만을 품은 김 부장의 단독 범행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자금업무와 무관한 그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려면 재무업무를 처리하는 데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수사를 맡고 있는 서울지방경찰청은 7일 김 부장이 이번 사기의 대가로 수천만원과 차량을 제공받았다고 밝힌 점을 두고 대출규모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다고 지적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합법적 중개수수료도 대출금의 5%를 넘는다"며 "누군가에게 상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납품업체 대표들이 KT 및 자회사 출신이거나 임직원과의 다른 끈이 있는지 여부도 확인해 봐야 한다. 연결고리가 있다면 김 부장 단독 범행은 아닐 개연성이 생긴다. 경찰의 수사가 집중되는 부분이다.

사기로 인한 피해액도 3,019억원 보다 커질 가능성도 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KT ENS 납품업체가 만든 SPC 가운데 드러나지 않은 것이 상당 수 있을 수 있다"며 "이들을 통한 대출도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이 밝힌 사기 피해 금융회사는 은행 3곳과 저축은행 10곳이지만, 이날 경찰이 밝힌 피해 금융회사가 수가 17개에 이른다는 점은 사기규모가 더욱 커질 수 있음을 예상케 하는 대목이다.

금융당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피해 금융사뿐 아니라 전체 금융권을 대상으로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 운영 실태에 대한 긴급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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