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은 지난달 한국에서 행방불명된 뒤 일본 기타큐슈 앞바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일본 내각부 공무원 S(30)씨 사건에 대해 7일 본격 조사에 나섰다. 전날 일본 정부가 공조 수사를 정식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S씨는 한국 입국 이후 미심쩍은 행적을 보여 그간 일본 정보요원설, 북한 스파이설, 여성과의 염문설 등 각종 억측이 난무했다.
한국 입국에서 시신 발견까지
일본 언론에 따르면 도쿄대 대학원 출신인 S씨는 2011년 내각부에 들어가 옛 경제기획청 산하 경제부국에서 근무했다. 지난해 7월부터는 내각부 싱크탱크 경제사회종합연구소 재외연구원 자격으로 2년 일정으로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유학 중이었다. S씨는 지난달 7~12일 서울에서 열린 사회과학 세미나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세미나에는 참석하지 않은 채 연락이 두절됐고, 20일 후쿠오카현 기타큐슈 해안 방파제에서 500m 떨어진 해상에서 고무보트에 실린 채 변사체로 발견됐다. 일본 경찰은 사인을 저체온증으로 공표했다.
꼬리 무는 설설설
일본 언론은 "공무여권 소지자가 유학처가 아닌 나라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하는 자체가 이례적이어서 세미나는 구실일 가능성이 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세미나 주제가 S씨의 전문분야와 관계가 없어 다른 목적으로 한국에 왔을 개연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일본 인터넷에는 그의 정체에 대한 온갖 루머가 난무하고 있다. 처형된 북한 장성택의 스파이설, 일본 정부의 스파이로 한국 정보당국이 제거했다는 설 등이 제기됐다. 이런 음모론은 반한 사이트인 투채널(2CH) 등을 통해 급속히 퍼졌고, 일본 정부가 시신 발견 뒤 보름이 지나도록 한국에 수사 협조를 요청하지 않자 더욱 설득력을 얻는 분위기였다.
반면 일본 주류 언론들은 여성이나 개인 문제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뉴스전문 채널 NNN은 "일본 정부가 이메일 등을 확인한 결과 공개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개인적인 문제로 귀국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공무여권을 소지한 S씨는 일본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귀국이 가능한데 허가를 얻지 못해 밀입국을 강행하다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일본 주간지 주간문춘은 "미네소타대에서 알고 지내던 한국인 여성을 따라 서울에서 부산까지 갔지만 실연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외무성 당국자 말을 전하기도 했다.
한국 내 행적도 의문투성이
S씨는 지난달 6일 오후 5시쯤 검은 점퍼를 입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서울 성동구의 한 보트판매점을 찾아가 영어로 자신을 홍콩인 알렉스 포라고 밝힌 뒤 현금 100만원을 주고 고무보트를 구입했다. 앞서 오후 4시쯤 남대문경찰서 서소문파출소에 들러 실명으로 여권케이스 분실 신고를 했다. 구입한 보트를 8일 부산의 한 호텔에서 인수받을 때에도 마스크를 쓴 채 홍콩인 행세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사히TV는 "여권도 아닌 여권 케이스를 분실 신고한 것은 서울에 있었다는 알리바이를 남기기 위한 의도"라고 보도했다. 왜 고무보트 구입 사실은 숨기면서 알리바이를 남겨야 했는지도 풀어야 할 과제다. 고무보트를 실제로 사용했는지 여부도 의문이다. S씨가 구입한 민물낚시용 보트는 길이 230㎝, 폭 135㎝로 어른 한 명이 탈 수 있는 정도다. 엔진은 부산에서 따로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보트에 맞는 엔진은 2.5~3.5마력으로 바다를 항해할 수준은 아니다. 파도가 거센 겨울에 이런 보트로 대한해협을 건넌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찰 수사로 의문 풀릴까
S씨의 국내 행적이 드러난 지역은 서울과 부산이지만 경찰청은 서울경찰청 외사과에 조사를 맡겼다. 일본 정부가 서울 행적에 대해 조사를 요청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S씨가 서울에서 머물렀던 중구 I호텔과 용산구 K게스트하우스, 보트판매점, 맡겨놓은 짐을 보관 중인 M호텔과 보트를 택배로 받은 부산 중구 T호텔 등을 상대로 사실 관계 확인에 들어갔다.
또 출입국본부와 항공사 등을 통해 S씨의 입국 날짜 및 출국 예정 항공편을 확인하는 한편 지난달 7일 서울에서 만난 것으로 알려진 한국인 친구와도 접촉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 혐의점이 없어 수사가 아닌 사실조사 단계"라며 "일본 경찰이 보안유지를 요청해 자세한 조사 사항은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김창훈기자 ch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