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독일 출신의 유명 여행기자인 안드레아스 알트만의 자전소설이다. 소설보다는 자전에 방점이 찍히는 이 책은 전도유망한 미남자였던 아버지가 나치대원으로 참전했던 정신적 외상으로 인해 일평생 가족들에게 휘둘렀던 처참한 폭력의 역사를 미시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아버지의 학대와 착취, 어머니의 나약한 방임과 도피로 인해 유년기를 박탈 당하고 소년기를 소거 당한 주인공의 시련이 전체 168장 중 140장까지 극사실주의적으로 집요하게 묘사ㆍ서술되지만, 가부장적이고 폭압적인 가족문화가 일반적이었던 동방의 독자에게 그것이 새롭거나 충격적이지는 않다. 다만 그 폭력이 어린 소년의 내면에 일으킨 슬픔에 공명하느라 책을 덮어버릴 수 없었을 뿐.
소설에는 "나는 울었다"라는 문장이 수시로 등장한다. 나이가 서른 살쯤 많은 자애로운 남자를 볼 때면 그가 내 아버지였으면 싶어서, 이국적인 분위기 속에서 모험과 유머, 우정, 사랑을 누리는 TV 드라마 속 주인공을 볼 때면 그 인생의 풍성함이 서러워서.
19세에 마침내 아버지를 무릎 꿇리고 탈출해 무려 19년 동안이나 정신치료를 찾아 전전했던 그는 우연히 투고한 여행기가 월간 잡지 GEO에 원문 그대로 실리며 단숨에 세계적인 여행기자로 발돋움한다. 택시기사, 연극배우, 건설현장 관리, 주차장 경비 등 수없이 많은 직업을 헤매다가 여행과 글쓰기를 통해 치유에 도달한 그는 그러나 지금도 아들을 껴안고 보호해주는 아버지를 스크린에서 볼 때면 혼자서 눈물을 흘린다고 마지막 문장에 기술한다. 가족 모두가 임종을 거부해 홀로 죽음을 맞은 아버지, 그토록 살해하고 싶었던 아버지의 사체가 담긴 관 앞에 주저앉아 늦은 밤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하게 울부짖으며, 그는 전쟁과 나치가 아버지의 영혼을 망가뜨렸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증오와 폭력만을 주고 받으며 망가진 인생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나는 울었다"고 그는 또 쓴다.
에필로그는 "사랑 받지 못하는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는 아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아이는 사랑 받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태어난다"로 시작한다. "나는 지금도 자다가 깨어나 울곤 한다. 혐오스러울 정도로 망가져버린 두 사람(아버지와 어머니)의 인생에 대해. 불행을 극복하지 못한 인생에 대해." 그가 2011년, 60세에 쓴 문장들이다. 가족이란 가장 착취하기 쉬운 대상이며,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흔은 대개는 극복되지 못한다.
박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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