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캅'(1987)은 추억의 영화다. 철갑을 두른 인간 반 로봇 반의 주인공이 악당을 처단할 때 1980년대 관객들은 쾌감을 느꼈다. 이야기는 단순하고 액션은 명쾌한 여느 블록버스터와 달랐다. 주인공이 지워진 기억을 조금씩 되살리며, 범죄자 처리 기계로 전락해버린 자신의 정체성에 회의를 느낀다는 설정이 극적 긴장을 안겼다. 미국 자본주의가 감추고 있는 치부를 어두운 색채로 묘사해 영화광들의 갈채를 받았다.
그런 '로보캅'이 21세기 방식으로 귀환한다고 했을 때 영화 팬들은 우려를 표했다. 20세기 고전 SF물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훼손할지 모른다는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13일 개봉하는 새로운 '로보캅'은 박진감 넘치는 영상과 잔잔한 감동으로 관객들을 유혹한다.
밑그림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시대는 2028년, 공간은 미국 디트로이트다. 뒷골목의 거물을 잡아들이려던 열혈형사 알렉스(조엘 킨너먼)는 되려 역공을 당한다. 폭발사고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 놓인다. 로봇으로 경찰을 대체해 부를 얻으려는 야심만만한 사업가 레이몬드(마이클 키튼)는 알렉스의 불행을 돈벌이에 활용하려 한다.
레이몬드는 비인간적인 로봇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법도 바꾸기 위해 알렉스의 머리와 장기, 한쪽 손을 이용해 인간 로봇인 로보캅을 만든다. 레이몬드의 꾀는 즉각 효력을 발휘한다. 로봇캅은 폐쇄회로(CC)TV의 실시간 영상정보를 분석해 닥치는 대로 흉악범들을 잡아들인다. 여론은 급반전한다. 로봇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고 로봇경찰의 도입을 금지하는 법이 폐지되려는 순간 로보캅이 생각하지도 못한 반란을 일으킨다. 레이몬드와 경찰 상부의 지시를 무시하고 자신의 신체를 뺏어간 악당과 비리 경찰까지 손을 대려 한다. 레이몬드와 로보캅은 결국 생명을 걸고 맞서게 된다.
원작과 작은 차이도 있다. 새로운 로보캅은 주로 바이크를 타고 디트로이트 시내를 내달린다. 철커덕거리는 소리를 내며 순찰차에서 내리던 원조 로보캅과 다르다. 원조가 묵직한 느낌을 전했다면 새로운 로보캅은 속도감을 드러낸다. 외관도 다르다. 크롬메탈 빛깔의 둔탁한 모습에서 검은 색의 근육질 몸매로 변했다. 알렉스의 아내와 아들이 지닌 이야기 비중도 키웠다. 기계덩어리나 마찬가지였던 알렉스가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에 설득력을 준다.
자본과 과학의 비인간적인 민 낯을 보다 직설적으로 고발한다. 알렉스의 남은 신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에선 솜털이 곤두서고 위장이 좀 불편하다. 알렉스의 꿈틀거리는 장기는 자본과 과학에 의해 농락 당하는 인간 존엄성을 상징한다.
좌우 돌아보지 않고 범죄자들을 응징하는 로보캅처럼 간결하고 화끈한 화법이 매력적이다. 가족의 의미와 과학문명 시대 인간의 정체성, 자본에 휘둘리는 미국 언론의 병폐 등 곱씹을 수 있는 설정들을 스크린 곳곳에 심어뒀다. 단순 오락물로 즐기면서도 꽤 의식 있는 영화로도 해석할 수 있다. 브라질 감독 호세 파딜라의 할리우드 데뷔작이다. 그는 브라질 특공경찰의 이야기를 스릴러 형식으로 그려낸 '엘리트 스쿼드'로 2008년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대상)을 받았다. 12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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