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책에서 비슷한 경험을 적어놓은 문장을 만나면 멈추게 된다. 최예선의 을 읽을 때 그랬다. 어린 시절, 저자의 할머니는 밤만 되면 옛날이야기를 들려줬는데, 어두컴컴한 천장은 그 이야기를 펼치는 그녀만의 영화관이었다고 한다. 내게는 할머니가 가까이 살지 않았기 때문에 바람 소리가 옛날이야기를 대신했다. 된바람에 뒷산 나무며 마당의 개집이 흔들릴 때마다, 내 방 어두운 천장엔 각종 괴물이 하나씩 등장했다. 눈을 질끈 감아도 사라지지 않았다.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선 내가 아는 이야기를 총동원하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까지 덧붙여 힘센 영웅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서정주의 시 '자화상'과는 다른 의미로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바람이었다.
스물한 살의 봄, 그 바람소리를 다시 들었다. 하덕규의 노래 '가시나무'로부터였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라는 고백을 시작하기 전, 을씨년스러운 바람소리가 불어오고 솟고 회오리쳤다. 숲을 뒤흔들어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을 내쫓는 폭력이자, 사귀자고 다가서는 모든 이들에게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는 내 마음의 어둠이었다. 어떤 날은 노래를 끝까지 들었지만 어떤 날은 바람소리만 듣고도 눈물이 흘러 돌아서야만 했다. 울컥 가슴을 치며 삶을 찌르는, 일상을 떠난 적이 없는 소리들을 나는 '인생의 잡음'이라고 불렀다.
작년부터 꾸준히 가수 이아립의 노래를 찾아듣고 있다. 왜 하필 이아립이냐고 묻는다면, 내 멋대로 명명한 잡음 이야기로 핑계를 삼겠다. 가령 2007년 발표한 '누군가 피워놓은 모닥불'을 들을 땐, 잡음을 따라 번지는 헤드라잇 불빛과 타들어가는 모닥불을 떠올리곤 했다. 노래가 끝날 무렵 "당신도, 당신도 여기 있나요"라는 질문 역시, 이 잡음 덕분에 바깥을 떠도는 바람처럼 생생했다.
2013년 발매된 4집 앨범 '이 밤, 우리들의 긴 여행이 시작되었네'에선 바깥의 소리들이 가사의 일부로 들어왔다. '서라벌 호프'는 이별을 이별답게 하고 출발을 출발답게 만드는 노래다. 호프에서 나눈 눈빛, 부딪치며 뇌까린 건배의 잔들을 기억하기 위해, '내 마음속에 버려두었던 사진기를 꺼내 찍는다.' 뒤이어 두 번 '찰칵'이란 사진기 셔터 누르는 소리에 힘이 실린다. 사진을 찍는다고 이 순간이 영원하지 않음을 우린 안다. 오늘 밤 우리가 이곳을 떠나 사라지면 서라벌 호프도 없다. 서라벌 호프가 계속 손님을 맞고 생맥주를 판다고 해도, 훗날 우리 중 한 사람이 추억을 더듬어 찾아온다고 해도, 그 가게는 '우리'의 서라벌 호프는 아닌 것이다. '찰칵'은 누구나 간직할 법한 젊은 날의 아린 지점을 일깨우면서 또한 객관적인 거리를 만드는 차가운 주문(呪文)이다.
'사랑의 내비게이션'은 유머러스하다. 너에게 가는 길을 자꾸 잃어버리니 내비게이션처럼 길 안내를 해달라는 착상은 신선하긴 해도 충격적인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이아립은 노래를 중간에 능청스럽게 뚝 멈추곤 내비게이션에서 나오는 안내문을 말투까지 똑같게 옮겨 읊조린다. "전방에 과속방지턱이 있습니다. 운전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노래의 마지막 역시 "목적지 부근에 도착하였습니다. 경로를 종료하시겠습니까?"라는 귀에 익은 안내문으로 마무리 짓는다. 과연 이 연인은 무사히 만났을까. 내비게이션은 왜 목적지가 아니라 목적지 '부근'에 도착하였다고만 할까. 목적지를 찾지 못하더라도 책임을 떠안지 않으려는 술수가 아닐까. 경로를 종료하는 쪽은 언제나 운전자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노래가 끝난 뒤에도 내게 이 물음을 거듭 던지게 만든 것은, 신기하게도 이아립이 삽입한 안내문이다. 흔하고 무미건조한 내비게이션의 안내문이 사랑을 이끌고 지키고 머무르게 하는 촉촉한 내면의 울림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바람소리든 사진기 셔터 소리든 혹은 내비게이션 안내문이든, 밖의 소리를 마음 안으로 끌어들여 속삭이는 사람을 만나면, 내 '인생의 잡음'을 들려주고 싶다. 소리로 은밀히 만들어가는 집, 그것이 인생일지도 모른다.
김탁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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