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이 쌍용차 해고노동자 153명이 낸 소송에서 회사측의 해고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리해고 당시 유동성 위기에 놓였지만 구조적인 재무건전성 위기까지 겪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또한 "해고 회피 노력이 일부 있었지만 가능한 모든 노력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해고가 적법하다고 판결한 1심과는 달리 '긴박한 경영상 필요나 충분한 해고 회피 노력' 등 정리해고의 요건을 엄격히 해석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이 남았지만 이번 판결이 쌍용차 해고노동자는 물론 노동계와 기업 등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장은 매우 크다. 무엇보다 2009년 대량해고로 초래된 쌍용차 노동자들의 기나긴 고통과 상처를 치유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난 5년간 자살이나 질환 등으로 24명의 노동자가 숨졌고 생활고 등으로 수많은 가족이 해체됐다. 판결이 확정되면 법정 투쟁을 벌여온 노동자들은 회사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지난해 11월 노동자들에게 내려진 46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이 구조조정 수단으로 정리해고를 손쉽게 이용해온 관행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작지 않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근로기준법의 정리해고 요건이 크게 완화하면서 기업들은 정리해고를 남발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2000년대에는 매년 3만~7만명이던 정리해고자가 2011년 10만3,000여명으로 외환위기 이후 최대였고, 2012년에는 8만2,000여명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늘리면서 상당수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한 결과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은 노동자들의 정리해고가 두 번째로 쉬운 법과 제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국회에는 정리해고 범위를 강화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계류돼있으나 재계의 반발로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여야는 정리해고 요건 강화를 함께 공약으로 내걸었다. 정치권은 이번 판결의 의미를 살려 법안 처리에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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