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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2월 8일] 에헤라 동백

입력
2014.02.0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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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입춘은 유난히 추웠다. 그 추위를 투덜댔더니 한 지인이 겨울바람에도 이미 봄바람이 숨어있다며 다독이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 말에 비로소 봄기운을 느낀 걸 보니 나도 꽤나 감성적인 사람임엔 틀림없다. 남쪽 바다에서는 이미 매화와 동백이 피기 시작했을 것이다. 겨울의 매운바람과 폭설조차 이겨내고 전령처럼 봄을 알리는 꽃이어서 그 꽃들에서 느끼는 감정은 예사롭지 않다. 매화는 깨끗한 백색이어서 고졸하면서 눈의 하얀 색깔과 묘한 뒤섞임이 있다고 느껴지는 반면 동백은 그 늘 푸른 잎뿐 아니라 선연한 붉은 꽃이야말로 가장 극적으로 눈과 대비되기에 시각적으로 더욱 또렷하다.

붉은 색은 정열적이다. 또한 자극적이다. 동시에 위험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사실은 붉은 색이야 본디 제 색이지만 그것을 보고 느끼는 사람들의 감정적 판단일 뿐이다. 어쨌거나 붉은 색이 주는 강렬함은 쉽게 잊지 못한다. 매화를 보면 그 한기를 이겨낸 것이 기특하고 애틋하게 느껴지지만 동백은 도도함을 넘어 처연함마저 느끼게 한다. 사실 동백의 진가는 나무에 매달린 꽃이 아니라 땅에, 풀밭에,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떨어진 꽃의 모습에서 발견된다. 시들어서 퇴색하고 말라가며 힘없이 사위는 다른 여느 꽃들과는 달리 동백은 절정의 순간에 그대로 '툭!'하고 떨어진다. 눈 내린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 숲에서 보았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먼저 떨어진 동백꽃 위로 더 붉은 동백이 몸을 날렸습니다. 봄이었구요,

아직도 한라산 자락에 잔설이 남은 4월이었구요.'

시인 변종태는 에서 그렇게 노래했다. 일본의 무사들이 동백을 좋아하는 것도 깔끔하게 꽃의 모습 그대로 품고 떨어지는 당당함 때문이라던가? 눈 위에 떨어진 빨간 동백꽃은 시각적 충격으로 오래 남는다. 마치 제 몸 던져 봄을 알리는 전령으로서의 역할에 끝내 충실한 것만 같아서 안쓰럽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는 봄을 맞아들인다. 내 몸은 아직 추위에 움츠렸지만 시린 삭풍 겨우내 이겨낸 나무는 의연하게 봄의 붉은 깃발을 흔들어 보인다. 그렇게 몸은 늘 한 박자 늦다. 하지만 한 박자 늦은 게 어디 몸뿐일까? 머리는 그보다 한 박자 더 늦으니 미욱하고 둔감함에 부끄러워질 때가 얼마나 많은가.

봄은 온다. 기어코 봄은 온다. 영원히 녹지 않고 추위에 가둬놓을 것만 같은 겨울도 그 자리를 내줘야 한다. 잠깐 꽃샘추위로 앙탈을 부려보지만 역부족임을 겨울은 안다. 겨울공화국에도 봄은 온다. 양성우가 그 제목의 시를 펴낸 게 1976년이다. 그런데 다시 겨울이 덮치고 있다. 기세도 등등하다. 그리고 동백꽃들이 분분히 떨어진다. 그러나 그 꽃들이 어찌 떨어지고만 있을손가. 봄이 골목을 돌아서고 있음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엉뚱하고 촌스러운 가짜 동백이 조화(造花)처럼 버티고 있다. 마오쩌둥의 홍위병들처럼 가짜 동백이 분분하다. 향은 없고 색깔만 덮어쓴 얼치기 동백들은 중국의 그 어린 것들과는 달리 낫살깨나 들었고 말단 세포가 아니라 중추 신경인 듯 울대를 울리며 기세등등하다. 향이 없음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탈색되지 않고 낙화하지 않는 조화의 장점만을 뻐기는 듯하다. 하지만 그들은 겨울의 조화(弔花)일 뿐이다. 자연의 조화(調和)는 그 어리석음과 거짓을 끝내 허락하지 않는다. 자신들은 온실에서 있으면서 나머지는 모두 엄동의 대지로 몰아대며 희희낙락하고 있지만 찬바람 한 번 누려보지 못한 동백은 이미 동백이 아님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런데도 겨울공화국의 동토에서 영생할 것이라 착각하는 그 조화(造化) 속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잠든 아기의 베개 맡에서/ 결코 우리는 부끄러울 뿐/ 한 마디도 떳떳하게 말할 수 없네/ 물려 줄 것은 부끄러움뿐'이라는 양성우의 절규가 여전히 동백꽃처럼 눈밭에 떨어진다. 홍위병들의 거짓 동백이 아니라 처연하게 날리는 동백이 봄을 알려온다. 기어코 봄은 오는 것임을.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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